[중앙일보]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음식을 먹고 나면 신물이 넘어온다든지, 속쓰림이나 가슴 통증 등으로 고생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상당수는 역류성 식도염이라 불리는 위-식도 역류질환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 서구에서는 흔한 병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1996년에 비해 2006년 위-식도 역류질환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했다. 건강검진자를 대상으로 한 몇몇 연구결과를 보면 검진받은 사람 중 10~15% 정도에서 위-식도 역류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낮에는 커피나 음료를 입에 달고 생활하다가 ▶저녁 회식자리에서는 삼겹살이나 파전 등 기름진 음식과 담배를 안주 삼아 술을 즐기고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서는 곧장 침실로 직행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생활습관이야말로 위-식도 역류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들의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다.
음식물을 먹으면 가슴 부위에 있는 식도를 거쳐 위로 내려가게 된다. 위-식도 역류질환은 이렇게 일단 위로 들어간 음식물이 식도 쪽으로 다시 거꾸로 올라오면서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는 음식물의 소화를 위해 위액이 분비되는데, 위액에는 강한 산성을 띤 위산이 포함돼 있다. 위 점막이야 위산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러나 식도 점막은 그렇지 않다. 음식에 섞인 위산이 자꾸 건드리면 염증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슴이 타는 듯한 증상(흉부작열감)이라든지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이 가장 일반적이다. 목의 이물감이나 음식을 삼킬 때의 통증, 기침, 쉰 목소리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튀김 등 기름기도 안 좋아위-식도 역류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우선 하부식도괄약근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근육은 식도와 위가 만나는 부분에서 위로 들어간 음식물이 식도 쪽으로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곳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에도 이 근육의 조이는 힘을 떨어뜨리는 것들이 있다. 박하·페퍼민트·스피어민트·초콜릿·알코올·커피(카페인 제거 커피도 포함)와 튀김 종류나 기름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그렇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라면 한두 잔의 커피나 알코올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증상이 심하면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양파·마늘·후추·계피 등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이 괄약근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음식물은 아니지만 흡연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역류성 식도염과 흡연은 관련성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위산의 분비량이 많아지면 질환이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위산 분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커피·알코올·후추 등의 식품은 위산 분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잠들기 2~3시간 전엔 먹지 말아야음식물을 먹은 후 바로 눕는 습관 역시 위-식도 역류질환에 매우 좋지 않다. 따라서 저녁 식사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나 저녁에 과식을 하지 않도록 하고, 야식을 피하는 습관을 갖도록 한다. 잠자리에 들기 2~3시간 이내에는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과식을 하게 되면 음식물이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식도로의 역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위산 분비량도 늘어나 위-식도 역류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과식하는 습관은 체중을 증가시킬 수 있는데, 비만은 위-식도 역류질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비만해지면 뱃살 때문에 위에 압력이 많이 가해져 식도로의 역류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코르셋이나 꽉 조이는 벨트 등과 같이 허리나 배를 너무 압박하는 복장 역시 같은 이유로 위-식도 역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이 이미 생긴 경우라면 염증 부위에 직접 자극을 줄 수 있는 음식도 피하는 게 좋다. 감귤류나
토마토주스,
오렌지주스 등과 같이 산도가 강한 음식은 식도의 염증 부위에 직접적인 자극을 줘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적포도주나 콜라 등의 탄산음료도 산성음료에 해당한다. 이 밖에 ▶우유나 요구르트 ▶기름이 많이 들어간 달걀 프라이나 스크램블 ▶고기튀김·베이컨·소시지·햄 등 어육류 ▶케이크나 포테이토칩 등 기름에 튀긴 스낵류 등도 염증에 자극을 주는 식품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이런 식품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 있으므로, 먼저 이러한 음식을 먹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거나 심해지는지 살펴보고 피하면 된다.
바쁜 일과에 쫓겨서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고 과식을 하거나, 밤늦게까지 일이나 공부를 하느라 야식을 한다든지, 음주와 회식자리를 쫓아다녀야 하는 것은 이제 현대인의 일상이 된 듯하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를 개선하긴 힘들지만 조금씩이라도 신경을 쓴다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야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라면
양념치킨·피자·족발 등을 시키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 것보다는 소화에 부담이 적은 죽이나 담백하고 부드러운 빵·토스트 등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굳이 직접 음식을 하지 않더라도 인스턴트 죽을 이용하거나 달지 않은 떡 종류를 준비해 놓았다가 먹어도 된다. 피치 못하게 치킨이나 보쌈 등을 배달시키게 될 경우엔 기름기 많은 부분은 제거해 먹고, 김치나 무채무침 등은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하면 낫다. 물론 어떠한 음식이건 야식으로 먹을 때는 배부른 느낌이 아니라 허기만 달래는 정도로 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김은미
대한영양사협회 홍보위원
강북삼성병원 영양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