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흐르는 눈물
우리가 외부의 대상에 대해 느낌을 받을 때, 제일 먼저 느낌을 갖는 것은 바로 눈을 통한 것입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눈을 통한 느낌은 우리 감각의 90 %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눈과 관련된 말도 많습니다. "눈 밖에 났다, 눈먼 사랑, 눈에 들다, 눈에 밟힌다(잊혀지지 않고 자꾸 떠오른다), 눈엣 가시, 눈치, 눈에 익다", 이런 말들은 눈이 우리의 감정과 매우 밀접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눈에서 배출되는 것을 보면 먼저 눈물이 있습니다. 눈물은 제일 흔하게는 슬플 때 납니다. 때로 너무 기뻐서 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눈물은 우리의 감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는 것처럼 눈물도 상태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됩니다. 소리 없이 그저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리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고 흐느껴 울기도 하고 통곡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눈물도 감정에 따라 달리 나오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달리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단지 감정과의 연관만이 아니라 몸과의 연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서 나오는 배출물로는 흔히 눈곱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고 났거나 병을 앓을 때 눈곱이 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곱은 눈물보다 특히 몸의 상태와 더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곱만 잘 보아도 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눈곱에 발등 깨질라
한의학에서는 눈을 오장육부의 정화(精華)라고 하여 오장육부의 정기를 함축하고 있는 기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창이라고도 하는 이 눈에 눈곱이 끼어 보기에도 좋지 않고 남에게 실례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을 표현할 때 눈곱만하다는 말을 씁니다. 그만큼 눈곱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눈곱에 발등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고 나서 세수를 바로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을 다그치는 말입니다. 그 작은 눈곱이 발등을 깨지는 않겠지만 지나치기 쉬운 눈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좋은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눈에 항상 무색 투명한 액체가 적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액체가 적당히 있어서 보기에도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기 마련입니다. 만일 눈물이 없다면 뻑뻑하여 눈을 감고 뜨기가 어려워집니다. 이 눈물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마치 자동차의 와이퍼처럼 노폐물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눈까풀과 눈동자의 마찰을 적게 하여 눈동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며 항균 작용도 있어서 외부의 감염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오장육부에 이상이 생기면 당연히 눈이 맑지 않게 되고 또 눈곱이 잘 끼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눈병은 화(火)가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몸에 화가 있어서 폐나 간, 혹은 비장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눈병이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눈병과 마찬가지로 눈곱이 끼게 되는 기본적인 원인은 몸에 좋지 않은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곱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눈곱이 끼되 굳어서 뭉쳐 있는 것은 폐의 기가 실한 것이며 눈곱이 묽게 되어 맺혀 있는 것은 폐가 허한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눈곱은 폐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며 눈곱의 상태에 따라 허실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눈에 이상이 있어서 눈이 아프고 눈이 붉어지기도 하는데 눈곱이 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좋지 않은 증상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원기가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좀 피곤하면 눈곱이 끼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곱이 자주 끼고 또 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자신의 병을 알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오장육부의 관계
눈물만큼 사람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눈물을 흘리는 동안만큼은 진실하다고 합니다. 슬플 때는 물론이고 기뻐서도 눈물이 나고 그저 아름다운 것을 멍하니 보다가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눈물이 사람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가장 본능적인 생리적 현상이다 보니,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사람들은 "남자는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남자는 일생에 두 번, 곧 태어날 때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뿐이라는 등의 말을 합니다. 이 말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눈물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눈물은 꼭 마음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을 보고 그 사람의 병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눈물은 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눈이 바로 간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갖는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눈물도 간에서 주관하는 액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이 나는지 아닌지, 또 눈물이 많은지 적은지로 간의 상태를 알아보게 됩니다.
눈에서 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곳으로는 특히 검은자위를 들 수 있습니다. 눈의 정 가운데에 있는 눈동자는 검은 색으로 신장에 해당합니다. 그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자위가 바로 간의 영역입니다. 눈을 들여다보고 전신의 건강을 알 수 있는 홍채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손바닥에서 전신의 병을 치료하는 수침이 있고 귀에서 전신의 병을 치료하는 이침이 있는 것처럼 눈만으로도 전신의 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한의학이 부분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에서 부분을 볼 수 있는 의학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도 하지만 눈을 통하여 몸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우리 몸의 창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눈물과 각 장부와의 관계
눈과 간과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눈 중에서도 검은자위입니다. 이곳을 한의학에서는 풍륜(風輪)이라고도 하는데 간에 병이 생기면 풍륜에 이상이 나타납니다. 감정이 너무 격하게 움직이면 눈이 깔깔하면서 눈알이 아프기도 합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눈두덩이 팽팽한 느낌이 있게 됩니다.
한편 눈은 전체적으로 간의 혈액이 부족하게 되면 눈물이 적어지게 됩니다. 또 눈에 눈물이 적어지므로 눈이 깔깔하게 느껴집니다. 나이 드신 노인들께서 이제는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더 서러워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또 만일 간에 열이 많으면 눈이 붉어지면서 햇빛을 보기 힘들고 눈에서 눈물이 많이 나게 됩니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간과 콩팥의 근원은 같다고 봅니다. 그만큼 간과 신장의 기능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뜨거운 눈물이라고 하면 실제 눈물의 온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느낄 뿐이지만 실제로 이런 느낌은 감정에 따라서만이 아니고 몸의 상태에 따라서 느껴지는 것이므로 주관적인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것입니다. 뜨거운 눈물은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 음기가 부족하면서, 간에는 뜨거운 기가 치밀어 오를 때 흘리게 됩니다. 간에 뜨거운 기가 치밀어 오른다는 것은 심하게 화를 내거나 반대로 극도의 슬픔이 넘칠 때나 너무 기쁠 때처럼 김장이 극도로 고조되었을 때, 혹은 몸의 병으로 간의 열이 있을 때를 말합니다. 이럴 때 흘리는 눈물의 온도는 매우 뜨겁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찬 눈물도 있습니다. 이는 신장의 바탕이 되는 정(精)이 부족할 때 흐르는 눈물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이란 정액을 포함하여 생명의 기본이 되는 물질을 말합니다. 이런 정이 부족하면 간의 기능도 떨어지게 됩니다. 이럴 때는 찬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눈물과 찬 눈물은 우리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매우 객관적인 자료입니다. 눈물 한 방울에도 내 몸 전체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아프거나 슬프면 눈물이 납니다. 아픈 것은 육체적인 요인이고 슬픈 것은 정신적인 요인입니다. 눈물이 나게 하는 정신적인 요인에는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해 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미스 코리아로 선발된 아가씨가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거나 생각지 않았던 큰 상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요인이 아니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요인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입니다. 바람은 한의학에서 볼 때 음양 중에서 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양은 음에 비해 잘 움직이고 변화가 심합니다. 바람은 이런 점에서 전형적인 양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눈병은 항상 열과 같은 양기에 의해 일어나게 됩니다. 눈은 차서 병드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눈물이 날 때 찬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몸이 허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간 기능이 떨어지면서 혈액도 부족한 사람과 간과 콩팥의 기능이 약할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연령층으로 보면 주로 노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오랜 병을 앓고 난 뒤 혈액이 부족한 사람들도 바람만 불면 눈물이 나게 됩니다. 계절적으로 보면 봄과 겨울에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이때 나는 눈물은 맑고 찬 느낌이 있습니다. 눈이 붉게 된다든지 아프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바람만 불면 눈물이 나는데 그 느낌이 뜨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간에 풍과 열이 많거나 혹은 간과 신장이 모두 약할 때 풍이라고 하는 외부의 나쁜 기운을 받아 생기는 병입니다. 간에 풍과 열이 많은 사람은 입과 코가 마르고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혀를 들여다보면 붉으면서 약간 노란 설태가 끼어 있습니다. 반면에 간과 신장이 모두 약한 경우는 어지러워서 눈을 뜨기도 힘들고 허리나 무릎에 힘이 없습니다. 자면서 식은땀도 많이 흘리고 속이 답답하게 열이 납니다. 이런 경우 결명자 차를 먹으면 좋습니다. 결명자는 이름부터가 막힌 것을 없애서 물길을 터놓는 것처럼(決) 눈에 막힌 것을 없애서 밝게 하는(明) 씨(子)입니다. 그런데 결명자는 무조건 눈에 좋은 것은 아니고 뜨거운 느낌이 드는 눈물이 날 때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명자의 성질이 약간 차므로 설사를 하거나 어지럼증이 있거나 몸이 찬 사람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서양 의학적으로는 만성 결막염과 같이 눈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나게 된다고 하는데, 염증이란 한의학에서 볼 때 열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외과적인 수술도 가능하지만 그 기본적인 원인이 간에 있기 때문에 간을 다스리는 약물 치료로 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눈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에 따라 병의 원인이 다르므로 바람이 불어 눈물이 나는 분들은 그 느낌이 찬지 더운지를 잘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시로 눈물이 난다
특별히 감정적인 변화도 없고 계절이나 바람과 같은 요인이 없는 데도 늘 눈물이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로 노인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나이가 젊은 사람에게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무시로 눈물이 나는 경우도 그 느낌이 찬지 더운지에 따라 원인이 다릅니다. 먼저 그 느낌이 찬 사람은 허해서 생기는 것인데 눈물이 맑고 추운 곳에서 더 심해집니다. 눈에 통증은 없으며 어지럽기도 하고 시력도 떨어집니다. 잠을 잘 못 자고 허리나 무릎이 시립니다. 또 입을 들여다보면 하얀 설태가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는 나이가 들어 신장의 기능이 너무 떨어졌거나 타고나기를 모자라게 타고난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간혹 성관계를 너무 많이 가져서 눈물이 무시로 나기도 하며 지나치게 울고 난 뒤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뜨거운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어지럽고 눈이 깔깔하면서 속에서 열이 납니다. 잠을 잘 못 이루면서 잠이 들면 식은땀을 흘리고 꿈도 많이 꾸게 됩니다. 입과 목구멍이 마르고 혀는 붉으면서 약간 노란 설태가 끼어 있습니다. 이는 몸 안에 음적인 기운이 부족한데 화가 왕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상은 눈물이 맑으면서 무시로 눈물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모두 눈이 붉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만일 눈이 붉거나 눈물에 고름 같은 것이 같이 나온다면 위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원인으로 생긴 병입니다. 눈물이 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눈물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무시로 눈물이 난다면 눈물이 나는 상태를 잘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눈을 잘 지키는 방법
눈병은 몸 안에 화가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을 잘 지키려면 눈을 덥게 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색(술과 성관계)입니다. 술은 그 자체가 더운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병이 생긴 사람은 물론 눈을 잘 보호하려면 술을 많이 먹으면 안됩니다. 또한 지나친 성생활 역시 눈에 영양을 주는 정을 고갈시키므로 눈병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눈을 잘 지키고 보호하려면 주색을 멀리 해야 합니다.
음식으로는 몸에 열을 내는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닭고기를 들 수 있습니다. 또 기름진 음식이 몸에 들어가 열을 내기 쉬우므로 튀김이나 비계와 같이 기름진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밖에 생선도 눈에는 좋지 않습니다. 국수나 찹쌀, 짠 음식, 신맛이 나는 음식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고기 중에서도 돼지고기는 그 성질이 차므로 먹어도 좋습니다. 다만 돼지고기에 양념을 하지 말고 그냥 수육으로 먹는 것이 좋으며 마늘과 같은 양념은 특히 피해야 합니다. 또 채소와 과일 종류는 전반적으로 그 성질이 차므로 눈에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눈을 보호하려면 잠시라도 하루 중에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굳이 단전호흡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용한 곳에서 똑바로 앉아 눈을 감고 눈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안경을 쓴 사람은 안경을 벗고 눈을 감습니다. 마음까지 쉬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또 아침에 일어나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빈 다음 손바닥에서 열이 나면 손바닥으로 눈을 잘 문질러 줍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창인 눈이 맑아지고 시력도 회복될 것입니다.
그림 눈과 장부와의 관계
코딱지 둔다고 살 되랴
콧물의 역설
흔히 콧물은 보잘것없고 더러운 것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딱지 만하다" 든지 "코딱지 둔다고 살 되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나 보잘것없는 것을 낮춰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콧물은 그렇게 더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일제 때의 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한국 사람이 통역을 하면서 외국인과 함께 집 짓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보는 자리에서 일을 하던 한국 사람이 일을 하다 손을 다쳐서 피가 나니까 코를 풀어 그것을 상처에 쓱 바르고는 다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외국인은 정말 한국인은 더러운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옆에서 통역하던 한국인은 창피하기도 하고 또 같은 민족이지만 정말 더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통역을 하던 한국인이 외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있었던 그 일이 늘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코가 그렇게 더러운 것인지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더럽게만 생각되었던 콧물에 놀랍게도 항균 작용을 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상처 난 곳에 콧물을 바르는 것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콧물은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늘 코 안에 소량씩 흘러야 합니다. 콧물이 코 안에 적당히 있어야 숨을 쉴 때 수분을 공급해 주기도 하고 또 먼지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나쁜 물질을 걸러내기도 하고 또 균을 죽이는 작용도 합니다. 콧물이 외부의 이물질을 걸러 내는 역학을 하기 때문에 먼지가 많은 곳에서 잠을 자면 코의 한쪽에 먼지가 쌓이게 되고 이것이 염증을 일으켜 축농증과 같은 질환을 일으키기 쉽게 됩니다. 그래서 교실에서 낮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학생 중에 축농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콧물은 우리 몸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체 배출물입니다. 또 콧물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흐르거나 없는 경우, 혹은 냄새가 나거나 색에 변화가 있는 경우를 보고 우리 몸의 상태도 알 수 있는 중요한 배출물입니다.
콧물이 내 몸 속과 연결되어 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만 콧물이 자주 흐르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조용히 해야 할 자리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과의 자리에서 체면을 차릴 수도 없게 콧물이 흐르면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코 안이 너무 메말라 콧물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뜻 생각에 편할 것 같지만 코 안이 말라 있으면 무엇보다도 숨쉬기가 어렵습니다. 또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콧물이 하는 일이 외부의 나쁜 물질을 일차적으로 걸러 내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코가 크면 무엇도 크냐?
코에 대한 속설이 여럿 있지만 코는 그런 우스개 소리의 재료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노자}에는 현빈(玄牝)이라는 문이 하늘과 땅의 뿌리임을 말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상공의 주를 보면 '현'은 사람에게서 코에 해당하고 '빈'은 입에 해당하는데, 코는 하늘의 기와 통하는 곳이고 입은 땅의 기와 통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코는 대기의 공기 등을 호흡하는 곳이고 입은 땅에서 나는 곡식 등을 받아들이는 곳이어서 이 둘이 사람에게는 근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코는 우리 몸에서 엄청난 지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콧물이 흐르는 코는 오장육부와의 관계로 보면 폐의 기능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폐를 말할 때는 단순히 호흡을 하여 혈액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기관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폐는 호흡보다는 우리 몸을 지키는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몸에는 외부로부터 몸을 지키는 기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외부에 있으면서 일차적으로 외부의 나쁜 기운과 대항하여 몸을 지켜 내는 역할을 하는, 위기(衛氣)라고 부르는 기가 있습니다. 이 기를 관리하는 것이 바로 폐이며 이 폐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 기관 중의 하나가 바로 코입니다. 그러므로 코는 호흡만이 아니라 외부의 기를 받아들일 때 가장 먼저 그것을 심사하여 나쁜 것은 걸러 내고 좋은 것은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코의 역할은 대부분 콧물이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폐에 이상이 생기면 콧물에 가장 먼저 이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폐 이외에 콧물과 관계가 있는 장부로는 비장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장에 습열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노란 색의 콧물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비장이 약하면 맑은 콧물이 나오게 됩니다.
또 신장이나 담 역시 콧물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처럼 콧물은 폐와 가장 연관이 깊지만 다른 오장육부 모두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몸의 상태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콧물에도 우리 몸 전체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슬픈데 콧물은 왜 나오나
콧물은 정상적인 경우에 늘 소량씩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런 생리적인 경우 이외에도 비정상적으로 콧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콧물을 나오게 하는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은 바람입니다. 특히 알러지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람만 불어도 콧물이 흐르게 됩니다. 또 찬 기운도 콧물을 흐르게 합니다. 찬 기운을 맞았을 때는 대개 맑은 콧물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콧물이 흐르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감정적인 변화에서 옵니다. 특히 슬픈 감정이 있으면 콧물이 흐르게 됩니다. 이는 눈물이 코로 들어가 나오는 것으로, 대개 이때도 맑은 콧물이 흐르게 됩니다. 반면에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콧물에 점도가 있으면서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간혹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최루탄과 같은 화학 약품 역시 콧물이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최루탄은 코의 점막을 강하게 자극하는 성분으로 되어 있는데, 최루탄을 맡으면 코의 점막이 자극되어 자기도 모르게 콧물과 눈물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최루탄과 같이 나쁜 기가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몸에서는 콧물을 많이 흐르게 하여 이 나쁜 기를 몰아내려 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아도 콧물이 외부의 나쁜 자극에 대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 역시 콧물이 나오는 원인이 됩니다. 평소 너무 매운 음식을 많이 먹거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습열이 몸 안에 쌓여서 담이라고 불리는 비생리적인 체액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이 담은 몸 안의 여기저기에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일부는 밖으로 나와 콧물이 됩니다. 이런 경우는 탁한 콧물이 나오게 되며 또 냄새를 잘 못 맡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음식은 아니지만 담배 역시 콧물을 많이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콧물이 유달리 많은 사람은 먼저 너무 매운 음식을 줄이고 술과 담배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콧물을 자세히 보면 생명을 안다
콧물은 언뜻 생각하기에 귀찮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지만 우리 몸을 보호하기도 하고 또 몸 안의 상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콧물을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콧물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저 보아서는 안되며 일정한 기준을 갖고 보아야 합니다.
먼저 콧물의 질을 봅니다. 물처럼 맑은 콧물이 있는가 하면 점도가 있는 콧물도 있습니다. 만일 맑은 콧물이 흐르면서 열이 나기도 하며 머리가 아프거나 기침을 한다면 대개 감기 초기 증상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맑은 콧물은 찬 기운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늘 몸이 피곤하면서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맑은 콧물이 흐른다면 이는 대개 기가 허약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서양 의학으로 말하자면 만성 비염의 초기나 알러지성 비염일 경우 맑은 콧물이 나오게 됩니다.
반면에 된 콧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콧물이 탁하면서 되게 나오면 이는 대부분 몸 안에 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서양 의학으로 말하자면 대체로 만성 비염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콧물을 볼 때 또 중요한 것은 콧물의 양입니다. 감기의 경우는 대개 콧물이 맑으면서 양이 많습니다. 콧물이 되면서 양이 많다면 폐나 비장에 열이 많기 때문이며 양이 적으면 몸 안이 건조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콧물의 색입니다. 대개 콧물은 노란 색이 약간 비치는 흰색인데 간혹 노랗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몸 안에 열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완전히 흰색이라면 몸 안에 찬 기운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콧물의 농도가 어떤가에 따라 몸의 상태도 다르게 됩니다. 콧물을 잘 관찰하여 내 몸의 변화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만큼 건강한 생활에 다가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코로 냄새만 맡는 것이 아니고 코에서도 냄새가 난다
간혹 코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는 냄새를 맡는 것이기 때문에 코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런 경우는 밖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고 자신의 콧물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킵니다.
코에서 단내가 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떤 일에 너무 마음을 태워 몸과 마음이 무척 피로해졌을 때 나는 냄새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시적이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편하게 쉬면 없어집니다. 문제는 오래 지속되는 냄새입니다.
가장 흔한 것이 무언가가 썩는 것 같은 악취입니다. 이는 축농증과 같은 경우에 많이 나타납니다. 한의학적으로 보자면 대개 습열이 많아서 나는 냄새입니다. 축농증과 같은 병이 없어도 몸 안에 열이 많이 쌓인 사람은 심하지는 않지만 코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코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풍과 열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양 의학적으로는 축농증일 경우에도 비린내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몸 안의 풍과 열을 없애 주면 대부분 정상적인 냄새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경우에서 보듯이 악취가 나든 비린내가 나든 모두 열이 주요한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코에서 냄새가 난다면 코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평상시의 음식 섭취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코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코를 건강하게 하려면 일반적으로는 열을 내게 하는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음식, 그리고 술을 삼가야 합니다. 위에서 본대로 코는 대개 열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동의보감}에는 코의 수련법이 나와 있습니다. 수시로 가운데 손가락으로 코의 양 콧마루 주위를 이 삼십 번 씩 문질러 주는 것입니다. 문지를 때는 피부에서 열이 날 때까지 문질러 줍니다. 특히 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 바로 시행하면 매우 좋습니다. 실제 이 방법을 시행하는 어떤 노인 분은 연세가 일흔을 넘기셨는데도(그리고 담배를 피우시는데도) 몸 전체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눈, 귀, 코, 입 모두 젊은이 못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은 앞으로 다시 말하겠지만 코만이 아니고 눈과 귀도 손으로 문지르는 법을 알고 시행하고 계십니다.
또한 한의학의 양생서에서는 코의 건강을 위해서는 코털을 없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는 하늘의 신령스러운 기가 출입하는 곳이기 때문에 장애가 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코털을 그냥 뽑는 방법은 매우 나쁩니다. 자칫 감염이 되면 뇌에 직접 연결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위나 콧털 소제기로 잘라 주는 것이 좋습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사람은 콧구멍에서 뺨 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영향 혈을 가운데 손가락 끝으로 많이 문질러 열을 내면 좋습니다. 민간 요법으로 하는 소금물로 코를 씻어내는 방법도 좋은 방법의 하나입니다.
한편 코가 좋아하는 일도 해야 하지만 코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코가 싫어하는 일은 앞에서 말한 자극적인 것이 다 포함됩니다. 음식도 그러하지만 담배가 특히 그렇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어차피 코를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이때 코에 많은 자극이 가게 됩니다. 특히 방안과 같이 밀폐된 곳에서 피는 담배는 금물입니다. 담배를 피우려면 밖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피우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줄이는 길입니다.
코가 싫어하는 일 중 또 하나는 코를 후비거나 이물질을 넣는 것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동전을 코에 넣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매우 나쁜 일입니다. 또 손가락으로 습관적으로 코를 후비는 것은 당연히 코를 자극하여 냄새를 못 맡게 하거나 콧속의 피부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밖에 너무 자주 코를 풀거나 너무 세게 코를 훌쩍거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소금 땀 흘리흘리
땀은 왜 나는가
우리 인체에서 배출되는 물질 중에 일상적으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땀일 것입니다. 그래서 땀과 연관된 말도 많습니다. 손에 땀을 쥔다는 말은 긴장하여 조바심이 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신적으로 긴장하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는 진땀이 나기도 합니다. 크게 고생하는 것을 두고 피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또 안하던 일을 힘들여 하는 것을 개 발에 땀난다고 합니다. 놀라거나 자다가 나는 땀을 식은땀이라고 하고 힘이 부칠 때는 비지땀이 난다고 합니다. 이처럼 땀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땀은 왜 나는 것일까요? 땀은 먼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 납니다. 땀은 더운 기운, 곧 양기가 나가는 것이어서 몸에서 열이 날 경우 땀이 나는 것입니다. 더울 때만이 아니고 병이 걸렸을 때에도 몸에서 외부의 나쁜 기운과 싸우기 위해서 열이 나면 또 땀이 나게 됩니다. 이런 땀은 체온을 조절하거나 아니면 나쁜 기운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땀은 더울 때만 나는 것은 아닙니다. 진땀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땀이나 비지땀은 정신적인 원인에 의해 나는 것으로, 이때는 주로 얼굴이나 손바닥, 겨드랑이, 발바닥에서 납니다. 또 음식에 의해서도 땀이 나게 됩니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나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에도 역시 땀이 나는 것입니다. 이때는 주로 얼굴, 특히 이마에 땀이 많이 나며 심한 사람은 목 위 부분 전체에서 집중적으로 땀이 나기도 합니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땀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소하게 보이는 땀이지만 땀은 우리의 건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체 배출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땀과 오장육부와의 관계
땀은 오장육부 중에서 심장과 가장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땀을 심장에서 주관하는 액체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장의 양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심장의 혈액이 부족하게 되면 땀이 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자다가 나는 식은땀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이지만 대부분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것입니다.
또 땀은 폐와도 관계가 많습니다. 폐는 호흡만이 아니고 우리 몸의 기를 전체적으로 주관하고 있습니다. 특히 피부는 폐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폐의 기가 허하면 우리 몸의 외부를 지키는 힘이 약해져서 땀이 나게 됩니다. 이럴 때 나는 땀은 운동을 해서 나는 땀과는 달리 허해서 나는 땀이며 땀이 나도 힘없이 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땀을 한의학에서는 자한(自汗)이라고 하여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땀은 비장(脾臟)과 관계가 깊습니다. 신장(腎臟)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기운이라고 한다면 비장은 후천적으로 먹는 것에 의해서 그 기운이 정해지는 장기입니다. 그런데 비장이 약해지면 땀구멍이 굳어지지 못하여 쉽게 땀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땀은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잘 나타납니다. 그렇게 뜨거운 음식이 아니고 또 매운 음식도 아닌데 유달리 음식을 먹을 때면 땀을 비오듯 흘리는 사람은, 아무리 건강해 보이고 소화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속으로는 비장의 기운이 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먼저 음식부터 조절해야 합니다. 당장은 소화도 잘 된다고 하여 음식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중풍과 같은 큰 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외에도 땀은 신장이나 간을 비롯한 오장육부와 긴밀한 관계가 있으므로 땀 한 방울로도 우리 몸 전체의 건강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땀을 내는 원인
땀이 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열입니다. 외부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몸 안의 온도가 올라가면 자연히 땀이 나게 됩니다. 반면에 추위는 땀을 그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땀 이외에도 바람 역시 땀을 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때의 바람은 열이나 습기를 동반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의 덥고 습한 바람은 불쾌한 느낌을 주면서 땀을 내게 합니다.
이러한 외부의 조건말고도 우리 몸의 조건은 땀을 내는 더욱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더운 여름에도 남들은 다 땀을 흘리지만 유독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추운 겨울에도 남들은 춥다고 옷을 여미고 난로를 가까이 하지만 혼자서 문을 열어 놓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땀을 잘 흘리는 사람은 평소 몸에서 열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열이 많다 고하여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소양인이나 태음인 중 일부처럼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 사람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땀이 나는 것이 정상이며 또 땀을 적당히 흘려줘야 건강에도 좋습니다. 이를 혼자서 판별해 보려면 운동이나 일을 하고 난 뒤 땀이 나서 몸이 가뿐해지는 느낌이 있는지 아니면 더욱 피로해지는지를 잘 관찰합니다. 땀을 흘리고 난 뒤 피로해지면 이런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해서는 안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의사에게 자신의 체질과 적당한 운동을 처방받는 것이지만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의 신호에 따르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고 나서 땀을 흘리면 몸이 개운하고 가벼운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고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면 너무 피곤해진다면 땀이 나지 않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비해 몸이 약한데도 몸에서 열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땀을 흘리기는 하지만 이런 땀은 오래 흘리면 좋지 않습니다. 몸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땀이 나는 경우 중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병이 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땀이 나는 수가 있는데 이럴 때 무조건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때의 땀은 외부의 나쁜 기운과 우리 몸의 기운이 서로 싸워서 나는 열로 인하여 나오는 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럴 때는 땀을 더 나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많은 땀을 내서는 안되지만 해열제를 함부로 쓰는 것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만일 이때 해열제를 쓰면 병은 오히려 더 깊어져서 쉽게 낫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땀이 나면 땀을 씻어 없애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땀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땀의 관찰
땀이 중요한 인체 배출물의 하나라고 한다면 땀을 잘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땀을 관찰 할 때는 먼저 그 느낌이 찬지 더운지를 보아야 합니다. 찬 느낌이 있으면서 맑은 빛을 띄면 대개 양기가 허하기 때문에 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뜨거운 느낌이 있으면 감기와 같이 외부의 나쁜 기운이 침범한 것이거나 아니면 이미 몸 안에 뜨거운 기운이 커진 상태입니다.
땀의 색도 중요합니다. 보통 땀은 색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때로 색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떤 색인가에 관계없이 병이 깊은 상태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많이 나타나는 색으로는 노란 색이 있으며 간혹 혈액 성분이 나와서 붉은 색이 나타나기도 하며 드물지만 녹색이나 검은 색의 땀이 나기도 합니다.
이외에 땀의 양과 땀이 나는 부위도 중요합니다. 몸 전체에서 땀이 나는 경우가 있고 머리나 이마, 혹은 등이나 다리에서만 나는 경우도 있으며 겨드랑이나 몸의 반쪽에서만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바닥이나 발바닥, 혹은 사타구니에서만 나는 땀도 있습니다.
또 땀이 흐르는 상태도 관찰해야 합니다. 줄줄 흐르는 땀이 있는가 하면 피부를 촉촉하게 할 정도로 살짝 배어 나는 땀이 있으며 땀이 나되 맺혀서 흐르지 않는 땀도 있습니다.
그리고 땀은 특별한 냄새가 없고 약간의 짠맛이 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간혹 아무 맛이 없거나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깨어 있을 때 나는 땀과 잘 때 나는 땀
체질적인 원인이나 일시적인 기후 관계, 혹은 약물 복용에 의한 것이 아닌데도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잠 잘 때 이외에 많이 나는 땀을 모두 자한이라고 합니다. 평소 몸이 허약하거나 아니면 열이나 습기가 많은 바람과 같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 자한 증상이 심해집니다. 여름에 더위를 먹었을 때도 역시 땀이 많이 나게 됩니다. 서양 의학으로 보자면 신경계통의 이상이 있거나 갑상선 질환이 있을 때도 땀이 많이 나게 됩니다. 또 정신적인 자극에 의해서도 땀이 나게 됩니다.
이런 땀은 모두 깨어 있을 때 나는 땀인데 잘 때 나는 땀이 있습니다. 자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깨고 나면 언제 땀이 났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옷이나 침구가 젖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땀은 도둑처럼 몰래 나는 땀이라고 하여 도한(盜汗)이라고 부릅니다.
자한과 도한은 잠을 자고 있을 때 나는가 아니면 깨어 있을 때 나는가에 따라 나눈 것인데, 이 두 가지 땀의 가장 큰 차이는 자한이 주로 양적인 기운에 이상이 생겨서 나는 것인데 비해 도한은 주로 음적인 기운의 문제로 생기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경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한은 기허할 때 생기는 것으로 보고 도한은 음허할 때 생기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치료 역시 자한은 양기를 중심으로 치료하게 되고 도한은 음기를 중심으로 치료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땀을 많이 흘리면 몸이 허해졌다고 해서 스스로 보약을 지어먹으려 하거나 진찰도 받지 않고 용하다는 곳에서 약을 지어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상대방의 몸을 위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받을 만하고 또 받아야 하지만 적어도 약만큼은 분명한 진단을 통하여 처방하고 조제해야 합니다. 땀이 나는 시간에 따라서도 그 원인이 다른데, 만일 음이 부족하여 땀이 나는 경우에 거꾸로 양기만 보해준다면 이는 치료가 아니라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밤과 낮의 차이만큼 병의 원인도 다르고 치료도 다른 것입니다. 땀 한 방울의 차이가 건강과 질병의 차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나는 땀
땀이 나는 부위의 차이 중에서 머리에 나는 땀만큼 특징적인 것도 없습니다. 머리에 나는 땀을 한의학에서는 두한(頭汗)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병이 없고 몸에 이상이 없어도 아이들이 잘 때 보면 머리에 땀이 나서 베개가 젖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잘 때만이 아니라 낮에도 아이들이 뛰어 노는데 유달리 머리에 땀이 많이 나서 매일 머리를 감기는데도 머리에서 땀 냄새가 나고 쉽게 더러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머리에 땀이 많이 나면 땀이 흘러 내려서 귀찮거나 더러워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놀다가 쉴 때나 새벽녘에 주위 온도가 내려가 추워질 때 감기에 걸리기 쉽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땀이 많이 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다른 아이보다 감기도 잘 걸리고 식욕도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땀을 한의학에서는 양명경의 열이 있어서 나는 땀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단순히 몸을 보해서는 치료되지 않습니다. 땀이 난다고 녹용만을 복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녹용은 몸의 열을 약간 높여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몸은 좀 튼튼해졌을지 모르지만 땀은 더 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땀이 난다면 단순히 몸이 허해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원인을 찾아서 정확한 치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땀을 많이 흘린다면 어디에서 주로 땀이 나는지 잘 관찰해야 합니다. 땀 한 방울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손발에서 나는 땀
땀이 나는 원인도 다양하지만 땀이 나는 부위도 다양합니다. 그 중에 손발에서만 땀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젠가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한의원을 찾아왔습니다. 신체 발달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모상 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손에서 땀이 너무 나서 공책에 글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시험을 볼 때는 긴장하여 땀이 더 나므로 시험지가 찢어져서 시험도 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했습니다. 손에 늘 땀이 배여 있으므로 손은 주부습진처럼 온통 헤어져 있었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손에서 너무 땀이 많이 나서 남들과 악수하기도 미안한 경우가 있습니다. 전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땀이 팔목을 따라 뚝뚝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 발에서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있어서 하루에도 양말을 서너 켤레씩 바꿔 신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에 땀이 많으므로 무좀이나 습진과 같은 각종 피부 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손과 발에서 땀이 나는 것은 주로 비위에 문제가 있어서 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허실의 차이가 있어서 몸에 습열이 많으면서 땀이 나는 사람과 몸은 차고 힘도 별로 없는데도 땀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간에 열이 많아서 이 열로 인해 가끔 속이 미식거리기도 하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소화는 잘 되어도 변비가 되어 속이 불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이나 발에서 땀이 너무 많이 날 때는 먼저 식생활부터 바꾸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위에 부담을 많이 주는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먼저 피해야 하며 밀가루 음식 역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술은 손발에 땀이 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술 자체가 습열이 많은 식품이므로 비위에 습열을 더하기 때문입니다. 매운 음식 역시 좋지 않습니다. 매운 음식은 열을 많이 내기 때문입니다.
가슴과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
가슴에서 땀이 난다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에만 땀이 나는 사람은 가슴에 꼭 손바닥만한 크기의 부위에서 땀이 계속 흐르게 됩니다. 이 병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록이 남아 있어서 한의학에서는 이를 심장 부근에서 나는 땀이라고 하여 심한(心汗)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슴에서 나는 땀은 대개 몸이 허해져서 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과로를 하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극도의 긴장 후에 주로 발생하게 됩니다. 너무 놀랬거나 심한 슬픔 이후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주로 나이로 보면 중년이나 노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땀이 나는 부위가 가슴이다 보니 그 원인도 대개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땀이 나게 됩니다. 또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서 소화기가 약해져서 땀이 날 수 있으며 또 콩팥이 약해져서도 땀이 나게 됩니다.
한편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은 땀 때문에도 고생을 하게 되지만 대부분 특이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실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은 유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부모가 땀이 나는 경우는 자식도 땀이 날 가능성이 많게 됩니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의 원인은 주로 간이 약해졌기 때문인데, 간이 약해진데다 몸 안에 열이 많거나 습기가 많을 때 땀이 나게 됩니다. 땀이 나고 냄새도 나기 때문에 아예 땀구멍을 전기 등을 이용하여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치료 방법은 한의학적으로 보면 원인을 두고 결과만 치료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상이 심할 때는 수술적인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이 되는 간을 함께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수술을 하여 땀은 나지 않더라도 간 자체는 약한 상태로 있으므로 다른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색깔이 있는 땀
원래 땀은 무색 투명합니다. 그런데 병에 따라서는 간혹 땀에 색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노란 색의 땀입니다.
이 노란 색의 땀은 주로 청장년 층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계절과 관계없이 노란 색의 땀이 나게 됩니다. 이 노란 땀은 전신에 나기도 하고 겨드랑이나 음낭 주위와 같이 부분적으로 나기도 합니다. 노란 색이라고 해도 완전히 노란 색은 아니기 때문에 흔히 지나치기 쉬운 것이 바로 이 노란 색의 땀입니다. 땀이 나는 부위가 부위인 만큼 몸이 불결해져서 노랗게 되었는지 소변 등으로 노랗게 되었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내복의 색이 다양해져서 땀이 나도 잘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땀의 원인은 간과 담에 습열이 쌓여서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몸에 열이 많으면서 갈증도 있고 속이 답답한 느낌이 있으면서 옷이 노랗게 되면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땀에 색이 있는 경우는 혈한(血汗)이라고 하여 붉은 색의 땀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땀은 주로 얼굴이나 겨드랑이에서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가슴이나 등에서도 붉은 땀이 납니다. 서양 의학적으로 보면 땀샘의 이상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붉은 색의 땀이 나는 것인데, 한의학적으로 보면 열이 지나치게 많거나 우리 몸의 기의 흐름에 혼란이 생겼을 때 생기게 됩니다.
그냥 땀이 많이 나는 것보다 색깔이 있는 땀이 나는 경우가 더욱 문제가 큰 것이기 때문에 색깔이 있는 땀이 나는 경우는 빨리 전문적인 진단을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땀에 색깔이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복은 항상 흰색으로 입어야 합니다. 이는 꼭 땀만이 아니고 우리 몸에서 배출되는 여러 가지 배출물의 상태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도 반드시 흰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탁의 불편함이 따르고 보기에 멋은 없을지 모르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내복은 항상 흰색으로 입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가지 땀의 상태와 위험한 경우
일이나 운동을 하고 적당히 흘리는 땀은 기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지만 땀이 나는 데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와 위험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땀이 나는데 늘 몸의 한쪽에서만 땀이 난다면 이는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대개 중풍의 전조 증상으로 나타나는 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몸이 아프거나 상태가 나쁜데 늘 오른쪽이나 왼쪽처럼 어는 한쪽으로만 증상이 나타나고 땀도 한쪽으로만 난다면 이는 중풍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또 이미 중풍에 걸린 사람 역시 한쪽으로만 땀이 납니다.
땀의 상태에 따라서 위험을 예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땀의 양이 많으면서 구슬 같은 땀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나면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땀이 구슬이나 기름방울처럼 계속 나면서 특히 얼굴에 많이 날 때는 양기가 모두 탈진되어 몸 안의 진액이 남아 있지 않다는 표현이므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음양의 기운이 모두 끊어졌다는 것으로 보고 이를 절한(絶汗)이라고 부릅니다. 양기가 모두 끊어졌을 때는 몸이 차고 땀도 찬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음기가 모두 끊어졌을 때는 몸은 열이 나고 찬물을 먹으려 하지만 이미 위험한 상태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땀은 단순한 몸의 온도 조절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질병은 물론 죽음까지도 예측하게 하는 중요한 인체 배출물의 하나입니다.
땀이 나지 않는 경우
땀이 많이 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땀이 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땀이 나지 않는 경우에는 손이나 발등에 부분적으로만 땀이 나지 않는 경우와 전신에 땀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땀이 나지 않으면 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체온조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몸의 온도가 올라가게 됩니다. 몸에서는 열이 나는데도 땀은 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노폐물을 외부로 배출할 수 없으므로 땀이 나지 않는 상태가 오래되면 인체의 신진대사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한편 손이나 발에 부분적으로만 땀이 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발에 땀이 나지 않으면 걸음을 걷기가 어렵습니다. 양말이 자꾸 벗겨지고 양말을 신지 않을 경우에는 신발과 발이 미끄러워서 걷기가 어렵게 됩니다. 손에 땀이 안나면 물건을 잡을 때 자꾸 미끄러집니다. 운전 중에 이런 상태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핸들이 헛돌기 때문입니다. 손발에 땀이 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몸 전체나 일정 부분에서 땀이 나지 않으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첫째는 피부가 너무 건조해져서 피부가 비늘처럼 일어나고 갈라지며 각종 피부병이 생깁니다. 중풍에 걸린 사람은 마비된 한쪽에 땀이 나지 않는 것처럼 몸의 일부에서 땀이 나지 않으면 그 부분을 지나는 경락에 문제가 있거나 서양의학으로 말하자면 신경이 마비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땀이 나지 않는 경우는 몸 안의 진액이 다 말라서 더 나올 땀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며 양기가 너무 모자라 땀이 없는 경우도 있고 선천적으로 약하게 타고나 어려서부터 땀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찬 기운에 병이 들어 땀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어느 경우이든 땀이 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태이므로 바로바로 치료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땀을 흘리고 난 후 주의해야 할 사항
땀을 흘리고 나면 당연히 몸의 온도가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반드시 추운 기운이 몸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스스로 몸의 온도 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살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는 먼저 땀을 씻어야 합니다. 땀을 씻되 덥다고 곧바로 찬물로 목욕을 하는 것은 가장 나쁜 일입니다. 물을 몸에 대기 이전에 마른 수건으로 흐른 땀을 잘 닦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땀을 들인 뒤 목욕을 해야 합니다.
또 땀을 들인다고 찬바람을 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특히 술을 먹고 땀이 나면서 더우면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지만 이때 함부로 찬바람을 쏘이면 감기는 물론 때로 입이 돌아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고 갑자기 에어컨 장치가 잘 된 실내에 들어가는 것 역시 매우 나쁜 일입니다. 땀은 몸 안의 노폐물 등을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도 있는데 갑자기 찬 곳에 들어가서 땀구멍을 막아 버리면 몸 안의 나쁜 기운이 그대로 몸 안에 남아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땀이 난 뒤에는 먼저 땀을 닦고 서늘한 곳에서 땀을 들이고 난 뒤 곧바로 목욕을 하든지 아니면 옷을 갈아입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땀을 흘리고 난 뒤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은 곧바로 맥주를 먹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 몸은 수분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때 맥주가 들어가면 알코올이 곧바로 위에서 흡수되어 전신에 퍼지게 되므로 한편으로는 피로도 풀리고 시원한 느낌도 있지만 요산을 다량으로 만들게 되어 통풍과 같은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운동 후 곧바로 먹는 맥주는 절대 금물이며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인 후 어느 정도 갈증이 사라진 뒤 맥주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정액도 관찰한다?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어려움
다른 사람의 인체 배출물 중에서 땀이나 침, 눈물 등은 가장 흔하고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과 자신의 상태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똑같은 음식을 먹는데 유달리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침을 자주 뱉는 사람의 침도 관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소변으로 가면 좀 어려워집니다. 그래도 대소변은 재래식이라면 화장실에서 남과 자신을 비교해 볼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좀 더럽다는 인식이 있지만 대소변은 일상에서 비교적 자주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정액이라고 하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정액이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 다른 사람의 정액을 관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자신의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내 키가 큰지 작은지는 절대적인 수치로 알아 볼 수도 있지만, 크다 작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만으로는 크다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액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조사를 하거나 비교를 하기 전에는 혼자서 정상이라는 기준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만큼 정액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금기시되어 있고 또 말을 하더라도 개별적인 차이를 일반화하여 말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속설도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의외로 사람마다 정액의 상태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민족(인종)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고 나이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그런데 정액의 상태가 이처럼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에서나 책에서 정액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내용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언급이 되어 있어도 성분이나 그것들의 기능, 혹은 조루와 같이 정액과 동반된 질환 등만 나와 있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다소 자세히 정액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정액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 상태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적지만 실제 임상에서 보면 매우 다양합니다. 여기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정액과 정精의 차이
정액은 정자를 포함하여 사정시에 나오는 액체로, 우리는 오랫동안 이를 그냥 정精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액을 정이라고만 부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단순히 물과 같은 액체로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액체의 개념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의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자의 경우도 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남녀의 두 정이 어우러져 자식이 생긴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오장육부에 다 정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정은 오장육부를 기르고 나아가 몸을 기르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사정시에 나오는 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것이 성교 등의 과정을 통하여 성기에서 나온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정액은 단순한 임신의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몸을 기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늘 내 몸의 정을 아끼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더 발전하면 도교와 같이 환정보뇌還精補腦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시 말하면 정을 사정하지 않고 다시 몸 안으로 돌려서 내 몸의 건강을 기르는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함부로 정을 낭비하는 것은 곧 내 몸을 버리는 것입니다. 서양의 근대과학으로 보자면 정액은 늘 만들어지므로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지만 한의학에서는 그렇게 쉽게 만들었다가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는 선천적인 정과, 태어나서 음식을 먹고 숨을 쉬고 활동을 하면서 얻게되는 후천적인 정이 합해져서 비로소 우리 몸은 건강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정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매우 삼가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만큼 나오는가
잘못 알려진 속설의 하나이지만 정액의 양이 많으면 정력이 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액의 양과 정력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 정액의 양은 5 ml 전후입니다. 보통 2-6ml 사이면 정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능은 정상이면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양이 아주 많거나 적을 수도 있습니다. 또 사춘기에 접어들어 처음 몇 번의 사정을 할 때는 거의 없거나 아주 적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아직 몸이 성숙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아직 몸이 덜 성숙했다는 증거이므로 사정을 자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차면 자연히 넘치듯이 좀더 몸이 성숙하면 충분한 양이 나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양이 너무 적으면(1 ml 이하) 당연히 정자의 수도 적기 마련이어서 임신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이 적다고 반드시 정자도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말입니다. 양이 적으면서도 성생활이나 임신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신에서 중요한 것은 정자의 숫자만이 아니라 정자의 운동성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정액의 양이 매우 적다면 한번쯤 정액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액이 전혀 배출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분명히 흥분하여 절정에 이르러 사정하는 느낌은 있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정액이 아예 생성되지 않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정액이 거꾸로 몸 안으로 사정되는 경우이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는 반드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늘 배출되는 양이 적은 경우도 있지만 지나친 성교로 인하여 양이 줄기도 합니다. 한번에 3회 이상 배출한다면 그 이후에는 정액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3-5일 정도 금욕을 한 뒤 양을 재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보다 많은 것은 큰 문제는 아니나 정액이 매우 묽으면서 양이 많다면 역시 정자 수에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액이 묽은지 아닌지는 배출된 정액을 손가락 끝으로 뭍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약간 묽게 쑨 풀처럼 일정한 점도가 있으면 정상이고 거의 딸려 올라오지 않으면 묽은 것입니다. 반대로 된 풀같은 상태라면 너무 진하여 이런 경우에도 임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임신과 더불어 더 큰 문제는 뒤에서 보겠지만 바로 그런 상태에 따라 내 몸의 상태가 다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병적인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색깔은 어떤가
산부인과에서 정액 검사를 오랜 동안 해온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통 정액 검사를 하려면 3일 이상 금욕을 하고 정액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받아온 정액을 눈으로만 보아도 제대로 금욕을 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분 말씀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압니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금욕을 했는지 아닌지는 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금욕했다고 잡아떼면 더 알아볼 길이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 분 말씀은 복잡한 검사를 하지 않고 육안만으로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면도 있다는 암시입니다.
보통 배출된 정액은 약간 누런빛이 도는 반투명한 회백색입니다. 이 색은 피로하거나 오랫동안 금욕을 했거나 오랫동안 맛이 진한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는 좀더 노랗거나 약간 갈색을 띄기도 합니다. 앞에서 검사를 통하지 않고도 금욕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금욕을 한 경우, 정액의 색이 회백색이라기 보다는 약간 누런빛을 띄어야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피로나 금욕과 같은 이유가 없이 만일 색이 아주 누렇다면 이는 몸 안에 습기나 열기가 많아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은 몸이 비습하거나 열이 많거나 서양의학적으로는 간염과 같은 간질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액 색깔이 너무 누렇거나 갈색을 띄면 먼저 일정 기간 피로를 피하고 담백한 음식을 먹으면서 일주일에 2-3회 정도 배출해보아도 계속 빛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몸안의 습열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양방의 검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양방 검사를 받았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비해 너무 흰색도 좋지 않습니다. 몸이 차거나 찬 기운이 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마른 사람이 많지만 얼굴빛이 희면서 살찐 사람도 있습니다. 대개 설사를 자주 하고 소화도 잘 안되며 소변도 맑고 양도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찬 음식과 찬물을 피하고 몸도 따뜻하게 해주면 좋습니다.
때로 핏빛이 보이기도 합니다. 정액 전체가 붉게 되거나 아니면 실핏줄 모양처럼 나타납니다. 이는 대개 몸에 염증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한의학에서는 같은 염증이라도 이를 여러 가지로 나누어 원인에 맞게 치료합니다. 일반적으로 염증은 열성이라서 차가운 소염제를 써야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거꾸로 몸이 약하고 차서 피가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소염제 계통의 약을 써서는 안됩니다. 또 양방적으로는 일정하게 피가 비쳐도 별문제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의학적으로 보아서는 치료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배출된 정액의 상태는 어떤가
공기 중에 배출된 정액은 곧바로 젤 상태로 응고됩니다. 그리고 빠르면 5분, 보통은 30분 정도 지나면 풀어져서 약간 끈기 있는 액체로 됩니다. 만일 처음부터 별 끈기 없이 흐르는 상태도 나쁘며 반대로 30분 이상이 지났는데도 액체로 변하지 않으면 둘 다 불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의 경우는 몸에 찬 기운이 많고 뒤의 경우는 열이 많은 경우입니다.
보통 정액에서는 밤꽃과 같은 특이한 냄새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 꽃향기와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모두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거나 때로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비릿한 냄새는 찬 기운 때문에 그러하며 누린 냄새는 열 때문에 그러합니다.
한편 정액에 돌이 섞여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배출된 돌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한의학에서는 일단 습열이 뭉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돌이 나온다면 반드시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정액과 날씨
날씨가 어떻게 정액에 영향을 주는지 의아하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날씨도 일정하게 영향을 줍니다. 너무 습한 날씨가 오래되면 먼저 소화기에 해당하는 비위脾胃가 상하게 되고 여기에서 생긴 습하고 탁한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 유정이나 조루가 되기 쉽습니다. 또 이런 과정에서 열이 많이 생기면 정액에 피가 비칠 수도 있습니다.
더운 날씨 역시 유정이나 조루를 유발하기 쉽습니다. 정액에 피가 비치기 쉽고 정액의 양이 줄거나 때로 사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주 추운 날씨는 정액을 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너무 습하거나 덥거나 추운 곳에서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치우친 기후가 적지만 요즈음에는 작업 환경에 따라 습기, 더위, 추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냉장 작업을 하거나 바다나 수영장 같은 곳에서 오래 일하거나 용광로 같이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경우에 정액에 이상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겨울에 하는 얼음 낚시나 여름의 밤낚시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 몸에는 큰 영향을 미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액과 감정
요즈음 한양방을 막론하고 정서적인 문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정도를 얼만큼 인정하느냐에 차이는 있습니다. 감정은 객관적으로 재기가 어려우므로 무시하는 경향도 있지만 사람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들라고 하면 정서를 들 사람도 많습니다.
너무 생각을 골몰하게 하면 비위를 상하여 기혈이 적어지고 혈이 모자라서 정을 만들지 못하면 정액의 양이 줄어듭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많으면 신腎을 상하여 신이 정을 가두어두는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유정이나 조루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무릎이나 뼈가 시린 증상도 따르게 됩니다.
특히 요즈음에 문제가 되는 것으로, 화를 내거나 억지로 참는 경우에는 간을 상하여 유정이나 조루가 심해집니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정력이라는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이처럼 우리의 정서가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정력에 이상 신호가 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수도자처럼 평온한 마음을 항상 유지할 수는 없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감정의 조화는 정력은 물론 내 몸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나오는가
정액 자체의 성질도 중요하지만 정액이 나오는 상태 역시 중요합니다. 흔히 정액은 모두 같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통 사정하기 전에 처음에는 가장 먼저 맑은 액체가 나옵니다. 이는 이를테면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액체입니다. 정액이 요도로 나오기 때문에 오염된 것들을 씻어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자가 포함된 액이 나오고 전립선액과 마지막으로 정낭액이 나옵니다.
정액이 나올 때는 힘차게 멀리 튀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여러 번에 걸쳐 강한 쾌감을 주는 경련이 함께 있으면서 그때마다 정액이 쏟아져 나와야 좋습니다. 만일 힘없이 밀려나오거나 강한 쾌감을 동반하지 않고 소변처럼 줄줄 흘러나온다면 신장 기능이 떨어진 것입니다. 또 특별한 자극이 없었는데도 저절로 흘러나오거나 소변에 섞여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신장 기능이 약해져서 그런 것입니다.
한편 몽정이라고 하여 잠을 자다가 성교하는 꿈을 꾸거나 혹은 꿈 없이도 사정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 사람이 성관계를 오래 갖지 않다가 몽정이 된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허약한데도 자주 몽정을 한다면 역시 신장 기능이 떨어진 표현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여러 가지 원인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정액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알기 어려운 것들이고 전문적인 검사와 진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 여러 이상 증후가 자신에게 있다면 하루 빨리 진찰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피는 기지배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피는 우리 몸에서 나오는 여러 물질 중 가장 인상이 강렬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색깔이 평소 몸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직접 연관이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붉은 색은 생명과 연관된 느낌을 많이 준다. 아이들이 넘어져 다쳤을 때에도 아파서 울기보다는 피를 보고 우는 경우가 많고 싸움을 하다가도 코피가 나면 지는 것으로 인정된다. 또 옛날 이야기 중 위독한 부모님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피로써 맹세하거나 ‘피를 본다’거나 아무튼 피와 연관된 말은 중요하다는 느낌을 넘어서 매우 비장한 느낌마저 준다.
실제 피는 기와 더불어 우리 몸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그런데 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을 느끼거나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뿐인데 비해 피는 구체적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피라고 하면 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와닿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통 혈기가 왕성하다든가 넘친다는 말을 하는데, 이 피는 기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 관계를 한의학에서는 ‘혈자, 기지배(血者, 氣之配)’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피는 기의 아내라는 말이다. 때로는 피가 기의 어머니라고도 한다. 기가 양적인 것이라면 피는 음적인 것이므로 피는 기의 아내 혹은 어머니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가 잘 흐르면 피도 잘 흐르고 기가 멈추면 피도 멈춘다. 그러므로 피는 피 혼자만 갖고 말할 수는 없고 항상 기와 함께 언급된다.
기와 피의 이런 관계는 피가 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밀접할 수밖에 없다. 한의학에서 볼 때 피는 우리가 먹는 음식 중 정미로운 부분과 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기와 피의 관계는 그만큼 밀접하게 된다. 또한 피는 기의 통제를 받아 작용한다. 마치 남편이 무능하면서 부인을 잘 돌보지 못하면 부인이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피도 기의 통제를 받지 못하면 제멋대로 흐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출혈이 되는 것이다. 출혈은 피가 몸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피가 자기가 가야할 길로 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한의학에서는 피가 가야할 길을 맥이라고 하였다. 요즈음으로 보면 이 맥은 혈관과 매우 비슷한 개념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혈관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에서 폐쇄적인 대롱과 같은 관(管)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물줄기나 산맥과 같이 안 밖으로 열린 개념인 맥(脈)이라는 말을 굳이 쓴 데에는, 내부에서 여러 장기 사이의 관계든 내부와 외부와의 관계든 인체를 폐쇄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처럼 열린 체계로서의 맥을 벗어나 피가 흐르면 이것을 출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출혈은 체내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체외로 드러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보통 몸밖으로 나오는 피를 보고 출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출혈이 더 위험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뇌출혈이다. 뇌출혈이 되면 그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양의학에서 보는 중풍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또 우리가 앞에서도 보았지만 항문이나 항문과 가까운 대장의 출혈은 선명한 피가 나오고 위나 장에서 출혈이 있으면 검은 피가 나온다. 그리고 이럴 때 더 위험한 것은 검은 피가 나오는 것이다.
쌍코피 터졌다?
일상 생활에서 코피가 나는 가장 많은 경우는 외부의 타격에 의한 것이다. 매를 맞거나 무언가에 부딪치거나 혹은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다가, 아니면 감기 등에 걸려 코를 너무 자주 풀다가 자극이 강하여 코피가 나게 된다. 대개 이런 경우는 솜 같은 것으로 막아주면 바로 그치기 마련이다. 좀더 지혈을 빨리 하려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에 얼음이나 물수건을 대준다.
그런데 코피는 단지 맞아서만 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맞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나는 코피이다. 가만히 있다가 나거나 자다가 나거나 하는 경우가 문제이다. 이런 코피에는 원인이 여럿인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코피가 자주 난다고 코 안의 혈관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보통 전기로 핏줄을 지져서 피가 나지 못하게 하는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가장 위험한 일이다. 코피가 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결과만 막는 것은 방안에 대변을 봐놓고는 신문지로 덮어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코피가 나는 이유가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가 여러 가지 이유로 위로 치솟아 머리로 향할 때 피도 같이 올라가게 되는데, 이때 더 이상 기가 치솟는 것을 막기 위해 코에서 먼저 피가 터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남편들끼리 싸움이 붙어 판이 커지기 전에 부인이 나서서 몸으로 막는 이치와 같다. 이는 몸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막아버리면 기는 더 위로 치솟아 머리끝까지 가게 된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너무도 분명하지 않겠는가.
저절로 코피가 나는 이유는 먼저 열에 의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개 출혈량이 아주 많지는 않다. 피의 색은 선홍색 혹은 짙은 선홍색인 경우가 많다. 몸에서 열이 나며 땀이 나거나 입에서 냄새가 나기도 한다. 대개 다른 출혈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화를 많이 내서 코피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여자의 경우에 월경량이 늘면서 덩어리가 많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는 단순히 코피만 멈추게 하려하지 말고 대개 급성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가까운 한의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몸에 열도 없으면서 자주 코피가 나는 경우가 있다. 열로 인해 피가 날 때는 대개 일시적이지만 이 경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해서 나는 것이 다르다. 대개 이런 피는 색이 그렇게 진하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간과 콩팥이 약해서 나는 것이다. 과로를 하거나 성생활이 지나치면 간과 콩팥이 모두 약해지는데, 흔히 신혼 때 쌍코피가 터졌다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개 밤새 코피가 나므로 아침에 일어나 피가 난 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일시적인 과로로 인한 경우는 별 문제가 없다. 좀 쉬면 곧 피가 그치며 또다시 과로를 하지 않는 한 반복되지 않는다.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피가 나는 경우는 대개 콧속이 마르며 입에 침도 적고 어지럽거나 귀에서 소리가 나기도 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잘 못이루며 자게 되어도 꿈이 많다. 허리나 무릎이 시리고 손바닥, 발바닥에서 열이 난다.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개 간과 콩팥이 약해져서 생기는 것이다. 과로하거나 신경을 지나치게 쓰거나 성생활이 과도할 때 생기므로 먼저 과로를 피하고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반복적으로 코피가 나는 경우는, 비장의 기능이 떨어진 경우이다. 이럴 때는 잇몸에서도 피가 나기 쉽고 부딪치거나 맞지도 않았는데 멍든 것처럼 된다. 얼굴색이 좋지 않고 입맛이 없거나 쉽게 피로해 한다. 목소리도 작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어지럽다.
이런 경우 모두 원인이 단지 콧속의 핏줄이 약해서 터지는 것이 아니므로 가까운 한의원을 찾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 근대의학에서는 코피가 날 때 의심할 수 있는 전신적 질환으로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질환,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혈소판 감소증과 같은 혈액질환, 급성 전염병, 비타민 씨 등의 결핍, 내분비 장애 등을 들고 있다.
코피를 그치게 하는 법
코피가 나서 급할 때는 우선 피부터 그치게 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위에서 말한대로 우선 물수건이나 얼음을 싼 수건으로 목을 식혀준다. 보통 뒷목에 대는 것이 원칙이지만 앞 목에 대도 효과가 있다. 또 솜 같은 것으로 코를 막거나 손으로 눌러주어도 좋다.
■동의보감■에는 코피를 그치게 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노끈으로 가운데 손가락 가운데 마디를 단단히 동여매는데, 왼쪽 콧구멍에서 피가 나오면 오른쪽 손가락을, 오른쪽에서 나오면 왼쪽 손가락을 동여맨다. 양쪽에서 나오면 두 손가락을 모두 동여맨다. 이 방법은 실제 효과가 있다. 끈을 찾기 어려우면 두 가운데 손가락 가운데 마디 안쪽이 서로 맞닿게 해서 잡아당겨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본다.
이외에 마늘을 찧어서 발바닥 가운데의 용천혈이라는 곳에 붙여도 잘 그친다. 마찬가지로 코피가 나는 반대쪽 발바닥 가운데에 붙여야 한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두 발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어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임시로 쓸 수 있는 것이다. 피의 양이 많거나 자주 반복적으로 날 때는 이런 방법으로 막아서는 안된다. 보다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코피로 약을 쓸 때 주의할 점
코피가 난다고 약을 마음대로 쓸 사람은 없겠지만 몇 가지 주의점을 추려 본다.
먼저 해열제 같은 약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 몸에 열이 있으면 무조건 해열제를 쓰고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병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또 코피가 자주 날 때는 감기약, 변비약, 홍화나 황화씨와 같이 피를 잘 돌게 한다는 혈액순환 개선제 등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몸이 허해서 그렇다며 무조건 보약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 보약에도 원인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며 때로는 오히려 보약이 코피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맞아서 타는 피가 아니라면 코피가 나는 원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조건 막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말은 원래 혈연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만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은 동양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한 예로 동양에서는 피로 맺어진 혈연 관계를 사회 관계로 연장하여 예禮라는 것을 만들었다. 예절이란 바로 생물학적 관계를 사회적 관계로 환원한 것에 불과하다. 집안이라는 말도 피를 나눈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가문에 먹칠을 한다’는 말도 피로써 맺어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봉건 사회에서 피로 맺어진 가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가문에서 ?겨나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자기를 보호해줄 곳도 찾을 수 없다. 돈을 벌거나 출세를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피로 맺어진 가문은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중국 무협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오늘 우리는 부모 형제로 이루어진 소가족을 전제로 부모를 생각하지만 당시의 부모는 바로 가문의 대표이기 때문에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서 가문의 명예회복과 나아가 부흥을 목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수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내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문을 살리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의 출세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는 물보다 진해야했다.
그러나 개인의 몸에서도 피는 역시 물보다 진하다. 피가 없이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는 비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피는 사람이 사람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이룬다. 피가 없으면 우리는 첫째 추워서 살 수 없다. 또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힘도 없어진다. 혈기가 왕성하다는 말은 피와 기가 충분하다는 말로, 곧 건강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생긴다. 간단히 말하자면 비위脾胃에 들어간 음식물이 정미로운 변화를 거쳐 붉게 되어 생긴 것이 피다. 우리 몸에서 피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피는 소중하다. 피가 있어야 눈은 볼 수 있고 피가 있어야 발은 걸을 수 있고 피가 있어야 손은 쥘 수 있다. 이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의 몸 꼴을 이루어 살게 해주는 것이 바로 피라고도 할 수 있다. 피는 기와 더불어 다니는데, 기는 밖으로 돌아 우리 몸을 지켜주고 피는 안으로 돌아 여기 저기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피가 안으로 돈다는 것은 혈맥 속으로 돈다는 말이다. 서양 근대의학의 표현으로 하자면 혈관 속으로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가 혈맥을 벗어나면(이것이 바로 출혈이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옛날 노래 중에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애절한 가사가 가슴에 와 닿던 노래였는데,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폐결핵으로 요절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도 우연인지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참 좋은 가수였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폐결핵으로 요절한 것이 아쉬움을 더했는지도 모른다. 폐결핵은 그 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곧잘 쓰이는 소재이다. 우연히 만난 두 연인, 아름다운 사랑. 그런데 한 사람이 갑자기 기침을 하더니 하얀 손수건에 샛빨간 피를 쏟는다. 그리고 죽음 ...
한의학에는 폐결핵이라는 병명은 없다. 굳이 폐결핵을 한의학과 연관시킨다면 노채증이나 객혈 혹은 타혈과 같은 증상들을 열거할 수 있다. 폐결핵의 전형적인 증상 중의 하나인 객혈은 기침이 나면서 피가 함께 나오는 것인데, 각혈, 해혈, 수혈 등으로도 불리며 그냥 토혈이라고도 하지만 토혈과는 좀 다르다. 토혈 혹은 구혈은 대개 위에서 나오는 피이고 객혈, 해혈은 폐나 기관지와 연관되어 나오는 피이다. 서양 근대의학의 표현으로 하자면 폐결핵, 기관지 확장증, 폐암과 같은 질환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객혈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외적인 요인으로는 풍한風寒이나 풍열風熱이 대표적인 것이고 내적인 요인으로는 간의 화火, 어혈 등이 있다. 폐결핵과 관련되어 중요한 것은 소위 음허화왕陰虛火旺이라는 상태이다. 이 말은 우리 몸의 음양이 조화를 잃은 상태인데, 콩팥의 음기가 모자라서 화火가 홀로 타올라 폐를 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징적인 증상은 지속적으로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기침을 하면서 피가 나오는데, 그 피는 선홍색이며 대개 가래보다 피가 많다. 마른기침이 나오거나 가래가 잘 안 뱉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오후가 되면 뺨이 불그스레해지면서 미열이 오른다는 점이다. 미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잘 때 땀이 난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손발바닥에 열이 나며 목이 마르고 가슴은 열이 나면서 답답하다. 그러면서 자꾸 마르는데,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오히려 성욕은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대개 폐결핵에 걸리면 무조건 금욕하라고 하는데, 정작 환자는 성욕을 더 느끼기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되는 것이다.
객혈은 본래 몸이 약하게 타고났거나 폐병을 앓거나 열병을 앓고 난 뒤에 술이나 성관계를 많이 가지면 생기기 쉽다. 그러므로 객혈이 있을 때는 병이 가벼운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한의원에서 진찰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개고기는 보신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객혈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인삼도 좋은 효과가 있는데 체질이나 병에 따라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므로 한의원에 문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외에도 당귀, 약쑥, 오미자, 생강, 귤껍질, 측백나무 잎 등이 좋으므로 이런 것은 차를 만들어서 자주 먹는 것이 좋고 배와 무 역시 좋으므로 즙을 만들어 자주 먹을 필요가 있다.
피를 토하고 병이 낳은 사람
옛 중국의 고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왕이 병이 들었다. 그런데 지나던 객이 보니 속에 화가 맺혀서 생긴 병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하고 왕을 화나게 하였다. 왕이 누워있는 침상에 신발도 벗지 않고 올라가는 등 무례하게 굴고 방자한 말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왕은 크게 화를 내고 마침내 벌떡 일어나 “저 놈을 잡아 능지처참하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만 피를 토하고 말았다. 다들 놀랐지만 이 객은 태연하게 “이제 왕의 병은 나았다”라고 선언한다. 속에 맺힌 피를 화를 돋구어 토하게 하여 병을 치료한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직 내가 한의학을 배우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고 같이 우리 집에서 자고 다음날 집을 나가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피를 토하는 것이다. 보기에도 끔찍한 샛빨간 피를 토했다. 둘 다 놀라서 급히 병원에 가보았는데, 그 의사는 별것 아닌 듯이 술의 자극으로 식도가 찢어져서 출혈이 된 것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다 같이 피를 토하는 것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객혈과 토혈은 다르다. 토혈은 피가 위나 식도에서 나오는 것을 말하며 가볍게 구토를 하면서 피를 쏟게 된다. 대개 음식물이 함께 나오며 가슴이나 옆구리가 아픈 증상이 따른다. 토혈은 객혈에 비해 피를 쏟는 것이 급하고 양도 많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심한 증상 같지만 객혈보다는 가벼운 증상이다. 대개 허虛한 것보다 실實한 것이 많고 찬 것보다 열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겉으로는 큰 병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히 치료되거나 자연히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객혈과 마찬가지로 원인을 정확히 알고 대처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의 근대의학에서 보자면 위나 십이지장의 궤양, 간경화, 위암, 만성위염, 위하수 등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의 예처럼 지나친 흡연이나 음주로 식도가 파열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절도있는 식생활이 중요하다.
여기저기에서 피를 보는 사람
대부분 4, 50대의 여성에 해당하는 증상이지만 간혹 젖에서 피가 나는 사람이 있다. 드문 경우지만 암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젖은 인체 부위 중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경락상으로 유방은 위경胃經에 속하지만 젖꼭지는 간경肝經에 속하여 서로 관리받는 곳이 다르다. 그래서 젖꼭지에서 피가 나는 것은 대개 간과 연관되어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꼭 피가 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간에 이상이 있으면 유방도 잘못될 수 있다. 특히 간은 소위 스트레스라는 것에 의해 쉽게 손상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거나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일 수록 간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방암과 같은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화를 적게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자주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좋다. 사람 좋다고 매일 참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앞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크게 화를 내버리는 것도 좋은 치료법의 하나다. 다만 사회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화를 푸는 대상이 가능하면 자연이나 다른 대상이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한다든지 하다 못해 노래방이라도 가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도 드문 경우지만 배꼽에서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배꼽에 종기나 생겨 피가 나는 것을 말하며 외상을 입어 나는 피는 제외된다. 대개 신생아에게 많고 성인도 가끔 있다. 탯줄을 잘못 처리했거나 감염이 된 경우가 많고 비타민 c가 모자라도 그럴 수 있다. 성인의 경우는 대부분 몸의 음기가 모자란 상태에서 화火가 왕성해져서 피가 나게 된다. 출혈량은 많지 않고 수시로 조금씩 나온다. 어지럽고 눈이 침침하며 손발바닥이나 가슴에 열이 나고 귀에서 소리도 들리고 목도 마르는데 성욕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근본 원인은 폐결핵과 같으므로 폐결핵의 경우처럼 성관계를 자제하고 해당하는 음식을 즐기면 좋다.
피부에서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땀구멍에서 나는 피인데, 혈한血汗이라고도 한다. 땀이 배어나오듯 조금씩 나오는 사람도 있고 쏟아지듯이 나오는 사람도 있다. 심장과 폐의 화가 지나쳐서 나오는 경우, 간의 화가 넘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기혈이 부족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화가 많은 경우는 출혈량이 많고 옷이 다 붉게 젖을 정도가 된다. 그렇지만 통증은 별로 없다. 이에 비해 몸이 허해서 나오는 경우는 양이 적고 대개는 잇몸에서도 피가 난다. 여자의 경우에는 월경이 많아진다.
피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번에도 말한 것처럼 피는 기와 하나되어 부부처럼 움직인다. 그러므로 피를 보지 않으려면 먼저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려야 한다. 반드시 피가 나와서가 아니라 얼굴색이 하얗거나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잘 생기는 사람도 피가 잘 돌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기가 잘 흐르고 따라서 피도 잘 흐르게 된다.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은 외부의 사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고도의 경지에 오른 도사나 신선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도 아니지만 더군다나 도덕군자나 신선도 아니다. 그러므로 보통 생활을 하면서 고요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의 고요함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사람으로서 고요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외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것이다. 뻣뻣하게 서 있다가 꺽이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구부러지는 풀잎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바람이 그치면 다시 고요해지는 풀잎이 바로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고요함이다. 다시 말해서 아예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유혹에 따라가되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것이 보통 사람의 고요함이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모든 흔들림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속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나 조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명예에 욕심이 없으면 남을 짓누르고 오르려하지 않는다. 이런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쉽게 피를 보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너무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을 피하고 김,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늘 섭취하는 것이 좋다. ■노자■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고 한다. 맨밥에 고추장, 된장 하나일지라도 그것을 달게 먹을 줄 안다면 역시 피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일과 휴식, 올바른 잠자리가 피를 피하는 첩경이 된다.
얼마나 중요하기에 ...
'경(經)'이라는 말은 피륙 따위의 세로 놓인 실, 곧 날실을 의미한다. 천을 짤 때 날실이 기준이 되어 이것이 곧지 않으면 천을 제대로 짤 수 없기 때문에 길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항상 변치 않는 도리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또 책을 의미할 때는 아무 책에나 ‘경’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모든 생각과 판단의 준거가 되는 책에만 이런 자를 붙인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불경이라든지 성경, 사서삼경, ■도덕경■(■노자■)과 같은 이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책들은 모두 지금으로부터 2천년 훨씬 이전의 책들이다. 사람들의 지혜가 깬 이후로 그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그 내용이 검증되거나 해석되어 사람들에게 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온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도 ‘경’ 자가 붙은 책은 ■황제내경■과 ■난경■, ■신농본초경■, ■맥경■ 등 몇 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그 유명한 ■논어■나 ■맹자■와 같은 책에도 ‘경’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지 않다. 이를 보면 책에 ‘경’ 자를 붙인다는 것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경’은 언제나 변함 없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서 다른 사람들의 거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더럽거나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인체 배출물 중에도 이 ‘경’ 자가 붙어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늘 숨기거나 쉬쉬해야 하는 것, 바로 월경이다.
왜 하필 월경인가
명나라 때의 장경악이라는 사람은 월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자의 몸은 음에 속해서 그 기가 달(月)에 응한다. 달은 삼십 일만에 한번 텅 비고 삼십일을 지나(經) 다시 나온다. 달은 달마다 기약한 것처럼 반드시 나타나는데, 그 운행에 변함이 없어서 이를 월경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달처럼 믿을만하다(信)는 말이기도 하다.”
월경은 우리말로 달거리라고 한다. 무슨 무슨 ‘거리’라는 말은 일정한 기간을 거쳐 되풀이되는 것을 말하는데, 매달 빠지지 않고 치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달 월(月) 자가 들어간 것은 이 월경이 달의 주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고 또 달은 해와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음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의 변화와 자연과의 관계를 고려한 표현이다. 이는 서양의 멘스라는 표현에도 남아있다. 멘스는 멘스츄루에이션(menstruation)의 줄인 말로, 멘스라는 말 자체가 '매달의(monthly)'라는 뜻이다. 그러면 왜 월경에 ‘경’ 자를 넣은 것일까.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월경
여기에서 말하는 전근대 사회란 주로 봉건제를 뜻한다. 봉건제에서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거꾸로 보면 봉건제는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사회 혹은 국가가 자기 완결적 구조를 갖고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금이나 특정한 광물과 같이 자체 생산되지 않는 것에 한하여 그 사회의 외부에서 들여왔을 뿐이다. 만일 이러한 교역이 일반화된다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어렵다. 봉건제의 토대인 자기 완결적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건제에서는 소위 ‘사농공상’이라고 하는 사회적 지위 혹은 가치 체계가 세워졌다. 자기 완결적 구조를 깨뜨릴 수도 있는 교역을 하는 상인들을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상의 발전할 수 없는 가장 낮은 층으로 몰아서 그 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계층별 서열이다. 물류라고 하여 교역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지고 있고 농업이 점차 쇠락해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전근대 사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층은 역시 농민들이었다. 이런 농민을 정치적 관점에서는 장정壯丁으로 부른다. 장정은 힘있고 씩씩한 남자(장壯)이면서 부역을 담당하는 단위(정丁)이다. 곧 장정이란 평소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전쟁이나 세금과 같은 부역을 짊어질 수 있는 건강한 남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모든 정책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바로 이 장정이었다. 그러므로 다스림의 대상으로서 특별한 언급없이 사람에 대해 말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장정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동양의 고전을 읽을 때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고전에서 말하는 사람은 다스림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사람으로서의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어■에서 군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지는 않는다(‘和而不同’)고 말할 때의 군자와 같은 사람은 다스림을 당할 사람이 아니라 남을 다스릴 사람이다. ■논어■와 같은 책에서 군자라고 할 때는 그저 수양을 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릴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에 다스림을 당할 사람을 대상으로 말을 할 때는 일차적으로 다스림의 주요 내용이 될 농업과 부역을 담당할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전근대 사회의 의서에서는 성인 남자의 병이나 몸의 상태를 가리킬 때는 아무 언급 없이 그냥 곧바로 질병이나 몸의 상태를 말한다. 이에 비해 여자와 아이는 사정이 다르다.
여자는 그냥 여자로 언급되는 법이 없다. 여자의 질환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부인으로 지칭한다. 부인은 그저 결혼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여자가 부인인 것이다. 소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소아는 나이가 어린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아직 생산을 할 수 없는 사람, 그러나 앞으로 생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인 여자를 부인이라고 지칭하는 사회에서 성인 여자의 가치는 아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바로 월경을 한다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그 사회의 장정이 될 아이를 생산하고 기르는 일의 전제조건으로 월경이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근대 사회에서의 월경
이에 비해 근대의 월경관은 어떠한가.
근대에 오면 전근대에 비해 노동력의 생산이라는 의미는 감소된다. 더 이상 여자는 장정을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그 자신이 생산적인 노동력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전근대에 비해 여자는 사회 혹은 이 가문의 구성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경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여자의 월경은 그 사회의 아이와 장정, 나아가 장래에는 노인의 지속적인 공급을 하는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공급을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피임의 등장이 그것이다. 달마다 치르는 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리적 과정의 하나로 월경이 이루어질 뿐이며 그것도 사회적 필요에 따라 조절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월경을 그저 월경 혹은 달거리라고 부르지 않고 생리라고 부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월경은 더 이상 자연과의 연관을 잃고 사회적 필요에 따라(이를 당사자들은 개인적인 필요로 느낀다)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만드는 수단으로 변한다. 소위 인공수정이라는 방법은 월경이 아니라 난자만 있으면 아이를 시도 때도 없이 만들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임신을 막음으로써 성을 자유롭게 상품화할 수 있게 된 점도 이런 변화와 함께 발생한 특징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월경은 노동력의 생산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이는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조절되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듯이 형제간의 나이가 대개 2-3년의 터울을 갖는 것은 가임 기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임신을 하면 10개월 간은 월경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출산 후 육아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보통 6개월 이상의 무월경 상태를 갖는다. 이는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면서 자연스럽게 월경이 나오지 않게 되는 생리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아기가 젖을 떼는 시기의 차이에 따라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정도의 터울을 두고 월경이 시작되면 다시 임신이 되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이다.
월경을 하지 않으면 편하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월경의 횟수와 노화 혹은 질병과의 관계이다. 여자의 난자는 그 숫자가 정해져 있다. 여자가 갖고 있는 난자 중 실제 자궁까지 나오는 난자의 수는 430개가 좀 넘는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정상적인 난자는 한달, 정확하게는 달의 주기에 따라 28일에 한번씩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비례의 관계는 아니지만 난자의 생산 주기는 그 사람의 노화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난자를 많이, 그리고 빨리 생산할 수록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임신과 육아 등으로 난자의 생산이 없어지게 되면 그만큼 노화의 속도도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리적 현상에 한정된 말이다. 피임약이나 병적인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어느 젊은 여성을 진찰한 적이 있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회사를 다니게 되어서 사회에 체력적으로 잘 적응하라고 어머니께서 보약을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것저것 기본적인 사항을 물어나가는데 월경에서 막혔다. 월경 주기는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1년에 서너 번 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초경을 한 이후부터 계속 그랬고 그것 때문에 무슨 불편이 없어서 오히려 편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월경을 하는 횟수가 줄어서 노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안에 큰 병을 만들고 있는 경우다.
그런데 이렇게 월경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편하지 않느냐는 생각의 밑에는 바로 근대적인 월경관이 깔려 있다. 더 이상 노동력의 생산이라는 필요를 갖지 않는 근대적 ‘생리’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이다.
월경은 어떻게 하는가
■황제내경■에서는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늙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콩팥의 기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콩팥의 기는 여자에게서는 7년, 남자에게서는 8년을 주기로 크게 변화한다고 말한다. 여자의 경우, 여자는 일곱 살(1■7=7)에 신기腎氣가 왕성해져서 이[齒]를 갈고 머리가 길어지며, 열 네 살(2■7=14)에는 천계天癸가 꽉 차서 임맥任脈이 통하고 태충맥太衝脈이 왕성하여 월경이 때맞추어 나오므로(月事時下) 자식을 둘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천계’는 서양의 근대의학에서 말하는 여성 호르몬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어떤 물질을 가리킨다. 임맥이나 태충맥은 모두 기가 흐르는 길로, 임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길이다. 여기에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 꽉 차있으므로 임신이 가능하게 되고 이를 기초로 월경이 ‘때맞추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월경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맞추어’ 나온다는 말이다. ‘때’(時)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 가장 적합한 상황을 말한다. 여름에 때맞추어 비가 오지 않거나 겨울에 때맞추어 추워지지 않으면 자연의 흐름에는 이변이 생긴다. 사람도 역시 제때를 못 만나 온갖 전염병에 걸리거나 이상한 병에 걸리게 된다. 이런 의미가 바로 때이다.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로, ‘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성공할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은 2002년 12월 14일 오후 1시가 그 사람의 성공할 시간이라는 의미가 전혀 아닌 것처럼 때는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조건이 어떤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이라는 의미이다. 14세가 되면 월경은 나오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조건에 따라 그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월경의 주기가 28일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늦거나 빠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편차는 어디까지나 2, 3일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이를 벗어난 것은 모두 병적인 것이다. 당장은 눈에 띄는 병적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속으로는 큰 병이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월경은 출혈이 아니다
그런데 월경은 절대 출혈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월경을 일정한 연령 기간 안에서 여성이 주기적으로 하는 자궁출혈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출혈이란 피가 자기가 가야 할 길로 가지 못하고 함부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월경은 이와 달리 오히려 제 갈 길로 가는 피이다. 월경을 단순히 피가 나오는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월경은 없어도 되는 것, 귀찮은 것, 불필요한 것이 된다. 월경은 나의 콩팥 기운이 왕성하여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며 이런 의미에서 나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적어도 건강한 생명력의 발현이라는 의미만큼은 없어져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다른 장기의 기운도 중요하지만 콩팥의 기운은 우리 몸을 근본에서 밑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며 다른 장기가 기운을 쓰도록 해주는 바탕이 된다. 콩팥의 기운이 떨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황제내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스물 한 살(3■7=21)에는 신기腎氣가 고르게 되어 사랑니가 나고 성장이 극極에 이르며, 스물 여덟 살(4■7=28)에는 근골이 견고해지고 신체가 장성壯盛하며, 서른 다섯 살(5■7=35)에는 얼굴이 초췌해지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이 때로 빠지며, 마흔 두 살(6■7=42)에는 얼굴이 모두 초췌해지고 머리가 희기 시작하며, 마흔 아홉 살(7■7=49)에는 천계天癸가 다 말라 월경이 나오지 않게 되므로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된다. 콩팥의 기운이 자라나고 쇠퇴함에 따라 내 몸의 변화가 이처럼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에서 21세에 성장이 극에 달한다는 말은 더 자라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특히 28세 이후에는 더 자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늙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35세부터는 늙은 티가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초산은 반드시 28세 이전에 해야 건강한 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요즈음 들어 점점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데,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때맞춰 월경을 한다는 것은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표현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표현이며 반대로 월경이 때에 맞춰 나오지 않거나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말이다. 월경은 그저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천계가 작용함에 따라 나오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결코 가끔씩 잊을만하면 귀찮게 터져 나오는 자궁 출혈이 아닌 것이다.
너희가 월경을 아느냐 ?
사람도 약에 쓴다
????동의보감????에는 여러 약재가 쓰이고 있는데, 요즈음 사람들이 들으면 의외로 생각될 것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람의 일부를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의 살이나 뼈를 발라 쓰는 것은 아니고 대개 소변이나 머리카락, 젖, 빠진 이빨 등을 쓰는데, 그 중에는 월경수月經水, 곧 월경할 때 나온 피도 있다. 특히 병이 없는 처녀의 첫 월경수는 홍연紅鉛이라고 하여 기혈이 쇠약해졌을 때나 목소리가 안나올 때, 온몸이 아플 때, 입맛이 없을 때 쓴다고 하였다. 오늘날은 월경수를 쓰지 않지만 이런 기록이 명나라 때(대체로 1520년대)부터 나오는 것을 보면 월경수를 사용한 역사는 짧지 않다.
이렇게 중요한 월경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월경수를 아예 보지도 않고 생리대에 싸서 얼른 남 보지 않는 곳에 버린다. 그래서 월경의 상태를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가 먹는 것은 머리카락이 붙었나 먼지가 붙었나 자세히 보면서도 정작 먹고 나서 온몸을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배출물에 대해서는 무슨 거머리 본 듯 한다. 배출물은 내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성적표다. 따라서 이는 열심히 입시공부를 해 놓고는 정작 시험의 결과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물론 자기의 배출물을 남에게 보여주면서 이러니저러니 토론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의사나 경험자와 상의흘 하려면 자신의 배출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월경의 주기는 달의 주기인 28일을 따른다. 이는 기준이 되는 주기이고 사람에 따라 20일에서 36일까지도 정상으로 보기도 한다. 단 각자의 주기는 늘 일정해야 한다. 자신의 주기에서 3일이나 5일 이내의 범위를 벗어나면 어떤 병이 있을 것으로 본다. 예로 한 달은 20일 만에 하고 다음 달은 35일 만에 했다면 이것은 주기가 어그러진 것이다. 또 한번 월경의 지속 기간은 3일에서 7일 정도가 일반적이다. 역시 이 범위를 벗어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월경의 양은 첫날보다는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양이 가장 많고 그 다음부터는 줄어든다. 월경양은 평균적으로 60ml 정도다. 월경의 색은 약간 어두운 홍색이며 첫날은 좀 엷다가 점점 진해지고 끝날 무렵이면 다시 엷어진다. 월경수에는 약간의 점액 성분이 있어서 일반 피나 물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래처럼 끈적끈적하지도 않다. 그 중간 정도의 점도다. 또 월경수는 잘 응고되지 않으며 덩어리는 없어야 하고 약간의 냉과 비슷한 냄새 이외에는 별 냄새가 없어야 한다. 월경이 시작되기 전이나 월경이 시작되면서 아랫배나 엉치뼈 부위에 가벼운 저린 느낌이나 빵빵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젖가슴도 좀 붓는 느낌이 있다. 가끔 어지럽기도 하지만 대개 월경이 시작되고 나서, 혹은 월경이 끝나고 나서는 곧 없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이런 가벼운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약을 먹거나 할 필요는 없다.
월경은 당연히 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지만 이것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먼저 외부의 환경과 마음 상태, 음식 등과의 연관을 보자.
먹은 대로, 마음먹은 대로 월경도 나온다
먼저 찬 기운은 피를 굳게 하고 또 잘 돌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기후가 몹시 차서 그 기운에 맞으면 주기가 늦어지거나 양이 줄거나 색이 더 어두워지며 점도가 낮아진다. 반대로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 기운에 맞으면 몸 안의 진액이 마르고 피는 제멋대로 돌게 된다. 그래서 주기가 빨라지고 양이 늘고 월경 기간도 늘어나며 색은 어두워지고 점도가 높아진다. 장마 때처럼 습한 기운을 받으면 평소 몸에 양기가 많던 사람은 주기가 늦어지고 월경 때가 아닐 때도 출혈이 있으며 점도가 높고 색은 어둡게 된다. 평소 양기가 부족한 사람은 주기가 늦어지고 양이 아주 줄며 색은 아주 어두워지고 대신 점도는 낮아진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음 상태다. 그 중에서도 화내는 것, 골똘히 생각하는 것, 두려움 등이 중요하다.
너무 화를 많이 내면 먼저 간을 상하게 된다. 간이 상하면 기가 제멋대로 치솟거나 막히게 된다. 그래서 너무 화를 많이 내면 월경 주기는 제멋대로 늦어졌다 빨라졌다 한다. 이것이 화를 내서 월경이 망가진 중요한 특징이다. 이때 색은 어두우며 점도가 높아진다.
너무 골똘히 생각하면 우리 몸의 기는 마치 실로 매듭을 짓는 것처럼 맺히게 된다. 따라서 기와 부부관계에 있는 피 역시 잘 돌지 못하게 된다. 또 너무 골똘히 생각하면 소화와 연관이 깊은 비장을 상하게 된다. 비장은 피가 온 몸을 도는 것을 통솔하는 곳이다. 따라서 너무 골똘히 생각하면 비장을 상해서 비장이 피를 통솔하는 역할을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월경 주기가 늦어지고 양은 아주 줄어들며 색은 옅어지며 점도도 낮아지는데 이와 반대로 주기가 빨라지면서 양이 크게 늘고 기간도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두려움도 월경에 영향을 미친다. 큰 두려움은 콩팥을 상하게 한다. 또 두려워하면 기가 아래로 떨어진다. 너무 두려워서 주저앉거나 오줌을 지리는 것은 모두 몸 안의 기가 아래로 떨어지는 상태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으로 콩팥을 상하며 주기가 일정하지 않게 되며 양이 크게 는다.
이외에도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너무 기뻐해도 심장을 상하며 너무 슬퍼하면 폐를 상하기 때문에 모든 지나친 감정은 월경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늘 고른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임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치우친 감정에 싸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월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음식이다. 앞에서 찬 기운이나 더운 기운에 맞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기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냉면은 메밀로 만드는데, 메밀은 찬 성질을 갖고 있어서 많이 먹으면 몸이 차진다. 이런 의미에서 냉면은 실제 온도도 차게 해서 먹기도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그 작용이 차기 때문에 찬 음식이라고 한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로 찬 음식이다. 녹두, 오이, 참외, 수박, 배추, 가지, 보리 등이 모두 찬 음식이다. 평소에 몸이 찬 사람이 이런 음식을 많이 먹으면 몸은 찬 기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더운 음식도 있다. 대표적으로 닭고기(튀기면 더 더워진다)와 달걀의 노른자, 양고기, 개고기, 고등어, 뱀장어, 양배추, 미나리, 시금치, 쑥갓, 파, 마늘, 후추, 생강, 고추, 들깨, 찹쌀 등이 그런 음식이다. 튀김 종류는 대개 더운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런 음식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들이고 어느 정도는 먹어도 상관은 없다. 다만 너무 많이, 그리고 계속 먹는다면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도 고르게 가져야 하지만 음식도 고르게, 치우치지 않게 먹어야 한다. 결국 월경은 내가 먹는 대로, 마음먹는 대로 나온다.
대체적인 판단 기준
여기에서 ‘대체적’이라고 한 것은 월경의 상태에 작용하는 요인이 많아서 자세히 말하려면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보고 알 수 있는 항목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기를 본다. 주기가 자꾸 빨라지면 대개 열이 많거나 어혈이 있을 때, 혹은 기가 허해도 그럴 수 있다. 반대로 늦어지면 허한 경우가 많다. 또 몸이 차거나 기가 잘 돌지 못해도 그럴 수 있다.
다음으로는 양을 본다. 평소보다 양이 눈에 띄게 늘면 대개 열이 많거나 어혈, 혹은 기가 허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줄어들면 몸이 허하거나 찬 경우가 많다. 양이 많았다 적었다 종잡을 수 없는 경우는 화를 많이 냈거나 스트레스로 간을 상한 경우가 많고 콩팥의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색은 눈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색이 아주 선홍색이거나 자주색, 혹은 갈색에 가깝게 검은 빛을 띈 자주색(자흑색)이면 대부분 열이나 어혈이 많은 것이다. 습이 많으면 쌀뜨물 같은 색이 나온다. 반면에 색이 흐리고 붉은 빛이 적어 멀겋게 보이는 것은 몸이 허한 경우다. 어두운 붉은 색이면 몸이 찬 것이다. 색이 진한 자흑색이고 덩어리가 있으면 어혈에 찬 기운이 겹친 것이다. 밝은 자흑색이면서 덩어리가 있으면 어혈에 열을 겸한 것이고 색은 정상인데 덩어리가 있으면 기가 맺힌 것이다.
점도 역시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월경수는 점성이 있어서 잘 뭉치지 않는다. 그런데 점도가 높으면(끈적끈적하면) 열이 많고 실한 것이다. 반면에 묽으면 찬 기운이 많고 허한 것이다.
이외에 냄새도 원인을 구별하는 요인이 된다. 악취가 나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열이 많고 실한 경우다. 비린내가 나는 것은 찬 기운 때문이며 악취가 심해서 자신도 맡을 수 없을 만큼 심한 냄새가 나면 어혈이 심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대체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의 몸 상태를 판단하고 거기에 따라 몸을 따뜻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서늘하게 할 것인지, 먹는 것은 찬 것을 먹을 것인지 더운 것을 먹을 것인지를 가려보면 된다. 그래서 열이 많고 실하면 반대로 몸을 서늘하게 하면 되고 찬 기운 때문이라면 덥게 하면 된다.
왜 색을 보는가
월경의 상태를 이런 기준으로 보는 것은 한의학만의 독특한 방법이다. 서양의 근대의학에서는 이런 상태가 그들의 판단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병원에 가도 이런 사항을 물어보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진단하는 방법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병을 보는 관점의 차이도 보여준다.
한의학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은 반드시 속에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얼굴빛 하나라도 그 사람의 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
????논어????에 보면 군자를 모시는데 세 가지 잘못을 말하면서 군자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자기가 말하는 것, 곧 조급함이 그 하나요, 말씀을 다 했는데도 답을 하지 않는 것을 숨김이라고 하고 안색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을 눈멈이라고 한다(????논어???? ?계씨?). 여기에서는 색이 그 사람의 마음 상태까지 보여주는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로 색은 그 사람의 신神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신’이란 좁게는 정신을 말하지만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생명력이 드러나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 마치 깃발이 어떤 조직의 이념과 지향, 그밖에 그 조직을 상징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색은 바로 내 몸의 모든 상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신을 알아채는 것은 상대와 나와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대상과 나는 하나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주관과 객관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대상에 대해 이런 식으로 아는 방식을 이해라고 한다. 영어의 ‘이해하다’(understand)는 말이 이와 가깝다. 대상의 밑(under)에 서있는 것(stand)이다. 멀찍이 떨어져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관점은 서양의 전통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다. 더구나 소위 ‘과학’이라고 하는 서양의 근대과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관점이기도 하다. 나와 관계없이 독립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신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그것은 주관적인 억측에 불과하며 따라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감각 기관은 말할 것도 없이 그나마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시각, 곧 눈으로 본 것도 그 ‘과학성’을 의심받는다. 모양도 그 ‘과학성’이 의심받는 처지에 색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것은 빛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과 하나가 되어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한의학은, 그리고 동양학 일반은 대상과 하나가 된 이해방식을 따른다. 따라서 색은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그 색이 변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변하기 때문에 늘 변하고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색의 변화 속에서만이 변하는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의미에서의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월경의 상태를 보고 몸이 차니 열이 많으니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 혹은 몇 가지 균이 있어서 병이 생긴 것이고 간이 부었든 심장에 구멍이 났든 혈관이 어디 막혔든 그런 객관적인 무엇이 없으면 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서양 근대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알 수 없는 병에 대해서는 모두 ‘신경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는 그 병에 대해 모른다는 말과 똑같다. 왜냐하면 ‘신경성’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서양의 근대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양의 근대과학, 그리고 의학에서는 연구나 앎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색을 보고 냄새를 맡고 병을 알아낸다. 이전의 글에서도 색이나 냄새 같은 것을 말했지만 앞으로도 이 글에서는 색과 냄새 같은 ‘주관적인’ 요인들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냉하면 무조건 찬 것인가
편작의 전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 중에 편작이라는 사람이 있다. 편작이 실재 있었던 사람인지, 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편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내용은 과거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기???? ?편작창공열전?이라는 글에는 편작이 여섯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한단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부인들을 귀하여 여긴다는 말을 듣고 대하의帶下醫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대하의’란 냉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 곧 산부인과 전문의라는 말이다. 편작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아주 고대에도 여성의 질환 중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남자 열 명을 치료하기보다 여자 한 명을 치료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여자는 몸의 구조도 복잡하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원인, 한의학에서는 이를 일곱 가지 정서(七情)라고 하는데, 이런 정신적 요인에 의해 병이 생기기 쉽고 또 정신적 원인으로 인한 병은 더 치료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여자의 병에서도 열 중에 아홉은 냉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냉은 매우 중요한 병이 아닐 수 없다.
냉, 이슬 또는 대하
냉(冷)이란 말 그대로 차다는 말이다. 냉수, 냉면, 냉방 등 모두 차다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냉이란 여성에게 이런 의미 이외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은 늘 따뜻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몸은 음양 중 음에 속하기 때문에 차게 되기 쉬우므로 늘 따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음양의 조화가 맞는 것이다. 예로부터 좋은 여성의 조건 중 하나는 한 겨울에도 이불 속에 들어가 안아보면 따끈따끈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성의 몸이 따뜻하다는 것은 한의학적으로 보면 무엇보다도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아이의 재생산이 바로 그 가문을 잇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이 따뜻한지의 여부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은 과거와 같은 가문이라는 의미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아이를 낳지 못하여 고통 받는 경우는 많다. 임신이 되지 않는 이유는 많지만 여성의 경우, 몸이 찰수록 임신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래서 과거에는 여자의 몸이 따뜻한지 아닌지가 좋은 여성의 판단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임신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꼭 아이를 낳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 여자의 몸이 정상이라는 말과 통한다. 일시적인 기능의 장애 때문이든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든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 여성의 몸이 건강한지를 알아보는 척도로서 냉이 중요한 것이다.
이 냉은 이슬이라고도 한다. 외성기로 맑게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이슬 같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냉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그것은 아랫배가 차서 생기는 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이라는 이름 때문에 큰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몸이 차서도 냉이 생기는 것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냉은 이슬이나 대하라고도 하는데 ‘대하’는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대하는 몸에 흐르는 경락 중 대맥帶脈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곧 습열濕熱이라고 하는 나쁜 기운이 대맥에 흘러 들어가 나오는 것을 바로 대하라고 한다. 대맥이란 우리 몸을 위 아래로 흐르는 12 개의 큰 경맥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맥이다. 마치 허리띠 같이 여러 경맥을 잘 묶어주어서 다른 경맥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와준다. 이런 대맥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냉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대맥에 이상이 생기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충맥과 임맥의 이상이다. 특히 임맥은 임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맥인데, 이런 임맥이나 충맥에 이상이 생겨서 대맥이 다른 맥들을 제대로 묶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냉이 생기는 것이다.
냉이란 무엇인가
냉이 많은 여자들이 겪는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타구니 주변이 늘 축축하기 때문에 약한 피부가 짓무르기 쉽고 각종 피부병에 쉽게 노출되어 가렵거나 걸을 때마다 상처 난 곳이 아프기도 한다. 또 문제는 냄새다. 나 혼자 가렵거나 아픈 것은 참는다지만 냄새는 그럴 수 없다. 심한 냉은 일종의 염증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성관계를 통하여 병을 남자에게 옮길 수도 있다.
이 냉은 보통 사춘기 때부터 나오게 된다. 이는 성경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춘기의 소녀 중 냉이 나오는 것을 보고 큰 걱정을 하기도 하고 또 남들이 알면 무슨 부정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되어 말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냉은 음란한 생각을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나오는 질 분비물인 애액과도 다른 것이다.
냉은 여성 생식기에서 흘러나오는 약간 끈적끈적한 분비물의 일종이다. 월경이나 기타 다른 출혈과 달리 맑거나 흰 색을 띈 분비물이 나오는데, 정상적인 경우 생식기 안쪽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역할을 하면서 외생식기 밖으로까지 나오지는 않는다. 여성은 여러 가지 질 분비물이 늘 나오게 되어 있어서 질 내부와 외음부를 항상 촉촉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외성기로 흘러나올 정도가 아닌 질 분비물은 정상적인 것이다. 오히려 이런 질 분비물이 없으면 더 큰 문제다. 질 분비물이 하는 역할은 평소에는 외부의 여러 나쁜 기운을 막는다. 냉은 외성기의 가장 바깥부위인 질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며 일정한 산도(酸度)를 유지해서 외부의 유해한 세균이나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병변을 일으키지 못 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또 성관계를 할 때는 윤활제의 역할을 하여 남성기의 삽입을 부드럽게 해준다. 성관계를 할 때 만일 이 분비물이 없으면 여성은 오히려 고통을 느끼게 되어 보조 윤활제를 사용해야 한다. 대개 나이가 들거나 몸의 진액이 마르게 되면 분비물이 줄어들어 원만한 성관계가 어렵게 된다. 밤이 무서운 남자도 있지만 이런 경우의 여성은 밤을 무서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질 분비물은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질 분비물 전체를 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성기 밖으로 이슬처럼 흘러나오는 것을 냉이라고 한다. 병적으로 양이 많아진 것을 냉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슬은 언제 어떻게 나오나
일반적으로 냉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일반적’이라고 한 것은 사춘기 전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여섯 살 정도의 여자 어린이에게서도 냉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특별히 무슨 균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 기력이 떨어져서 진액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항생제 치료를 하면 오히려 몸을 더 약하게 만들게 된다. 이런 경우는 배를 따뜻하게 하면서 비위脾胃의 기를 올려주면 된다.
냉은 보통 월경 전이나, 배란기, 임신했을 때 좀더 많아진다. 생리 전과 생리 후의 냉은 젖빛이고 하얀 덩어리로 적게 나오는 반면 생리 중간에는 점액이 많아져서 끈적끈적해진다. 또한 정액 같은 알카리성 물질이 질 안으로 들어오면 이를 중화하기 위해 냉이 더 분비되기도 한다. 이런 증가는 생리적인 것이어서 따로 치료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경우가 아닌데도 속옷이 젖을 정도로 많거나 냄새가 심하거나 냉 이외에 다른 증상이 따라오는 경우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냉은 차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냉은 여러 가지 질병 때에 보게 되는데 대체로 비脾나 신腎이 허할 때, 간의 기가 뭉쳤을 때, 습과 열, 혹은 담이 몰렸을 때 나타난다. 따라서 똑같은 냉이라고 해도 그 양이나 색깔, 성상, 냄새, 동반되는 증상들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냉은 성기의 염증성 질병, 위치 이상, 종양 특히 악성 종양, 이물질, 당뇨병, 혈액 순환기 질환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질병 때에 동반되는 증상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냉이 있을 때는 그 원인이 되는 여러 가지 질병들을 미리 막으며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비나 신이 허할 때는 대개 몸도 차게 되므로 몸이 차서 냉이 생기는 것이 맞다. 이런 사람들은 몸 전체는 물론 특히 아랫배를 따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여자들 중에 배꼽 티라고 하는 옷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경계할 일이다. 몸 중에서도 아랫배를 차게 해서 냉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름이라도 아랫배만큼은 꼭 감싸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냉은 그 이름과는 달리 열을 동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는 국부에 집중적으로 열을 쏘이게 되면 냉이 잘 생긴다. 특히 전기방석이나 담요 등을 음부에 직접 사용하게 되면 냉이 생기기 쉽다. 마찬가지로 몸에 꽉 끼는 청바지나 내복도 냉을 만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역설적이지만 너무 청결한 생활 습관도 냉을 만든다. 너무 자주 목욕을 하게 되면 피부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며 특히 뒷물 할 때에 쓰는 화학성분의 청결제는 오히려 냉을 만든다. 질 분비물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살균력마저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광범위 항생제를 장기간 사용하는 것도 냉은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순수 자연 성분이 아닌 화장품 역시 냉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시판되는 거의 모든 화장품에는 향이나 색을 내기 위한 인공 화학 성분과 방부제가 들어가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냉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그러므로 색이 진하거나 향이 강한 화장품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반드시 냉장고에 넣고 쓰게 되어 있는 화장품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방부제가 들어가 있다고 보아도 좋다.
용변 후에 사용하는 화장지도 문제다. 화장지는 여성의 경우, 외성기와 접촉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색이 진하거나 완전히 흰색인 화장지에는 인공 화학 색소나 표백제 등이 들어 있어서 발암 요인도 될 수 있으며 냉 역시 만들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외성기와 항문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밑을 씻을 때는 반드시 외성기에서 항문 쪽 한 방향으로만 닦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복도 색이 진한 팬티는 거기에 첨가된 화학 성분이 염증 반응을 유발하여 냉을 만들 수 있다. 또 팬티만큼은 순면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외에 비만, 당뇨, 임신, 피임, 영양결핍 등이 모두 냉을 만들 수 있다.
냉에 대한 오해와 진실
냉은 성관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답은 관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성관계 자체가 냉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난잡한 성관계는 냉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녀가 냉이 있다고 해서 처녀성을 의심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난잡한 성생활이 냉을 만들기도 하지만 냉은 만드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므로 냉이 있다고 해서 꼭 난잡한 성관계를 가졌다고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난잡한 성생활로 냉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냉이 심하면 남자의 정력이 약해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질 분비물은 정자를 죽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정력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세균의 감염이 있을 때 남자도 감염은 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성병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염이 되는 것이고 만일 그 성병으로 치명적인 병에 걸려 정력이 약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냉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냉이 심한 여성은 아이를 못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이는 냉 때문에 정자가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냉이 심한 경우는 몸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서 아이를 갖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냉 자체가 임신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심한 냉이 나오는 몸의 상태가 임신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대맥에 이상이 생겨 냉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대맥이 약하면 유산이 잘 된다. 그러므로 냉이 있으면 임신 자체가 잘 안되지만 임신이 되더라도 출산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외에도 독신 여성, 인공 유산을 자주 한 여성, 생리통이 심한 여성, 음주와 흡연이 많은 여성에게 냉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또 화를 자주 내는 사람에게 냉이 많다. 위에서 열거한 원인 중 간의 기가 뭉쳐서 냉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독신 여성에게 냉이 많은 이유도 정신적인 이유가 크다. 그러므로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스트레스를 자주 풀도록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책이다. 숲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냥 한가한 주택가를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루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전업주부라면 남편과 아이 내보내고 설거지 한 다음 옆집 주부들과 함께 동네 한바퀴 돌고 누구네 집에 모여 수제비라도 해먹으면서 수다를 떤다면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가 아니겠는가.
이슬에는 아침 이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은 그 색에 따라서도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오색대하라고 한다. 오행의 다섯 가지 색에 따라 몸의 상태를 나눈 것이다.
흰색의 분비액이 나오는 경우는 습이나 찬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흰색이어도 양이 아주 적고 냄새가 없으면 정상으로 볼 수 있다.
누런 분비액이 나오는 것은 열이 많은 경우이며 대장균이나 임균과 같은 각종 세균에 감염된 경우가 많다.
냉에 푸른빛이 돌면 풍과 습이 원인이며 검은 빛을 띠면 찬 기운과 습이 함께 있는 것이다. 푸른빛은 트리코모나스 균에 감염되었을 때 나타나는 특징적 증상이기도 하다.
붉은 냉은 습과 열이 함께 있는 것으로 각종 염증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자궁암이 있을 때도 붉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붉은 색이 나타나면 주의해야 한다.
여러 색이 뒤섞여 나오는 냉은 가장 위험한 상태다. 곧바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냉이 맑고 묽으면 몸이 허하면서 찬 기운이 많은 것이고 반대로 끈적끈적하면 열이 많은 것이다. 냉이 침이나 콧물같이 나오면 비가 허한데 습이 몰린 것이다. 비지 모양의 덩어리가 나오면 대개 칸디다와 같은 진균류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염이 되서 냉이 나올 때는 성관계를 갖지 말고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
냄새 역시 몸의 상태를 보여준다. 썩은 냄새는 열이 많은 것이고 비린내는 찬 기운이 많은 것이다.
이슬이 나오면 무얼 먹을까
????동의보감????에서는 냉에 좋은 민간요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 구릿대(백지)는 흰 이슬이 나올 때 좋다. 말린 구릿대를 달여 먹거나 가루 내서 먹는다.
약쑥도 권할 만하다. 약쑥에 아교주와 건강을 넣기도 하지만 약쑥만으로도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효과가 있다.
메밀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이 있는 경우에 좋다. 메밀을 가루 내어 달걀 흰자위에 반죽한 다음 자잘하게 알약을 지어 말린 다음 한번에 20 그램 정도씩 빈속에 먹는다.
미나리도 좋다. 우리가 보통 먹는 대로 나물로 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어도 좋고 날로 먹어도 좋다.
이제 쓴물도 안 올라오네
토해 본 사람은 안다. 토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토하고 또 토해서 이제 더 토할 것도 없는데 그 놈의 토악질은 끝이 없다.
토하는 것은 밥만이 아니다. 술을 먹은 사람은 술이 올라오고 국수를 먹은 사람은 국수가 올라오고 먹은 대로 나온다. 또 먹은 것만이 아니고 가래도 나오고 피도 나오며 회충도 나온다. 배멀미나 차멀미로도 토하고 술이나 밥을 너무 많이 먹어도 토하고 감정이 너무 격해져도 토하고 잘못 먹은 것을 게우기 위해 혹은 술을 깨기 위해 억지로도 토한다. 심지어 오로지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고 토하고 또 먹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든 토하는 그 자체는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하게 하는 방법도 있으니 토하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 토하는가
토하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도 많아서 토하기, 구토(嘔吐), 토역(吐逆), 토악질, 게우기, 넘기기, 구역질 등이 있고 토하려고 하는 느낌을 메슥거리다, 욕지기라고 한다. 실제 무얼 게우지는 못하면서 토하는 경우는 헛구역질, 건구(乾嘔)라고 한다. 이렇게 이름이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 일상과 관련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은 토해보았을 것이다.
????황제내경????에서는, 모든 토하는 것은 기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으로 그 근본 원인은 화(火)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는 불이다. 뜨거운 기운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몸 안에 뜨거운 기가 생기면 마치 불이 위로 타오르듯이 기가 위로 치밀어 오르면서 속에 있던 이런저런 물질을 함께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며 밥을 잘 먹고 나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토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기가 위로 치솟아 올랐기 때문에 토하는 것이다. 담이 속에 가로막혀 있거나 찬 기운이 위(胃)의 입구에 몰려 있어서 음식물이 내려가지 못하여 토하기도 한다. 특히 담이 있는 경우에는 가래와 같은 것이 함께 나오게 된다. 음식물이 명치끝에 막혀서, 곧 체해서 토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는 위의 입구가 좁아지거나 위암과 같이 이물질이 위의 입구를 막으면 잘 토하게 된다. 원래 위는 영어의 제이(j) 자처럼 생겨야 하는데 갓난아기는 위가 일(1) 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젖을 먹고 바로 누이거나 움직이면 토하게 되는데, 이는 병이 아니고 아직 아기의 장부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여 토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젖을 먹이고 나서 잠시 꼿꼿하게 안고 등을 여러 번 쓸어주면 된다.
토하는 것도 다 다르다
우리는 보통 토한다고 하지만 토하는데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구(嘔)와 토(吐)를 구분한다. 보통 토할 때는 ‘웩’ 하는 소리를 내기 마련인데 이처럼 토할 때 소리가 나는 것을 ‘구’라고 하며 이에 비해 소리가 나지 않으면서 밥과 같은 것을 넘기는 것을 ‘토’라고 한다. ‘구’는 양명경이라는 경락과 연관이 있는 것이어서 기와 혈에 모두 병이 든 것이다. 이에 비해 ‘토’는 태양경이라는 경락과 연관이 있는 것이어서 혈에 병이 든 것이다. 그러나 ‘구’와 ‘토’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이어서 임상에서도 ‘구’와 ‘토’를 엄격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마치 부부처럼 혈은 기의 짝이기 때문에 기가 잘 돌지 않으면 혈도 잘 돌지 않고 반대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사실상 구토는 복합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헛구역질이라는 것은 소리는 나는데 토한 것이 나오지 않는 경우다. 이를 마른 구역질이라고 해서 건구(乾嘔)라고도 하고 한의학 용어로는 얼(?)이라고 한다. 이는 기에 병이 든 것이다.
또 음식물을 먹고 곧바로 토하는 경우가 있고 먹고 나서 한참 있다가 토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마가 걸렸던 병, 반위(反胃)
반위는 음식을 먹고 한참 지나 토하는 것이다. 아침에 먹으면 저녁에 토하고 저녁에 먹으면 다음날 아침에 토하게 된다. 서너 시간 지나서 토하는 경우도 있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 토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토한 것의 특징은 먹은 음식물이 거의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는 점이다. 또 시큼한 냄새도 난다. 이는 위산이 함께 나오기 때문인데, 위로 들어갔던 음식이 마치 위를 뒤집어 도로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여 번위(?胃)라고도 한다.
이 병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적 요인 중에서도 슬픔이 가장 중요하다. 서자로 태어난 이제마는 13세 때 아버지를 잃는다. 그리고 이제마를 감싸주며 아껴주었던 할아버지마저 그해 겨울에 돌아가시게 된다. 이미 그 전 해에 동생을 잃었던 이제마로서는 온갖 슬픔이 한꺼번에 몰아쳐온 시기였다. 그리고 21세에 긴 방랑은 마치고 결혼을 했지만 다정다감하던 첫 부인은 7개월 된 젖먹이를 남기고 죽는다. 이런 일들이 서자로서의 이제마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상의학에서 볼 때 반위라는 병이 주로 태양인에게 걸리는 병이고 이제마 자신이 스스로를 태양인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이런 슬픈 경험들이 반위라는 병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마는 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양인의 해역증과 열격증은 죽을 지경에 이르기 전까지는 생활하는 것이나 음식 먹는 것이 여전하므로 사람들은 이 병을 가벼이 여겨 일반적인 병으로 보기 때문에 병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 태양인의 장부를 갖고 태어난 나는 일찍이 이 병을 얻어 6, 7년간 구역질이 나고 입에서 끈끈한 침이나 게거품을 토하였다. 수십 년을 잘 섭생한 다음에야 요절을 면하였다. ... 열격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한마디로 말하여 화를 내지 않는 것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열격증’은, 물은 먹을 수 있지만 음식물을 먹지 못하거나 음식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 토하는 것을 말하는데, 반위와 같은 병증이다.
반위의 특징 중 하나는 토하기는 하되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양인은 의지가 강한 반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에 약하다. 이런 상태에서 슬픔과 같은 감정이 지나치게 되면 병이 생긴다.
반위를 위암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위암과 서로 유사성이 많다. 위암도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고 다만 속이 거북하고 배가 부른 느낌이 있으며 소화가 안되면서 식욕도 떨어진다. 이런 증상은 보통 소화불량일 때 흔히 나타나는 것이어서 가볍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병이 진행되면 위 속에 암세포가 커져서 토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토하게 되면 이미 병은 위험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근대 서양의학에서 위암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식품 등이 위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보고 있다. 유전적인 소양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도 반위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증상은 위나 십이지장의 궤양이나 암, 여러 부위의 협착 등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마는 반위의 처방으로 약도 들고 있지만 몸을 잘 섭생하는 것과 특히 화를 내지 말 것을 내세우고 있다. 화는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화를 내면 먼저 간을 상하게 된다. 그리고 지나치게 커진 간의 기운은 비위를 억누르게 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위의 병이 생기는 것이다. 감정으로 보자면 화내는 감정을 많이 갖는 사람은 그 화가 좌절되었을 때 슬픔을 더 크게 느낀다. 큰 슬픔, 깊은 슬픔, 오래가는 슬픔은 반대로 그 사람의 분노가 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경우든 지나친 감정은 몸을 상하기 마련이다.
비위가 약하면 잘 토한다
구토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장부는 비위(脾胃)다. 우리는 보통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나 이상한 것, 또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거나 먹게 되면 비위가 상한다고 한다. 속이 메슥거리면서 토할 느낌이 드는 것이다. 토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위가 상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 사람이나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나쁘기는 한데, 화가 난다기 보다는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거북한 느낌을 말한다.
비위가 상하는 원인은 첫째로는 음식이다. 음식은 규칙적인 시간에 충분한 여유를 갖고 먹어야 한다. 하루 세끼, 아침은 넉넉하게, 저녁은 적게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는 소란하지 않는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가능하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먹는다. 요즈음의 식당, 특히 패스트푸드 음식점은 이런 점에서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또한 음식은 너무 맛이 진하면 안된다. 앞에서 위암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음식을 들었지만 그런 음식의 공통점은 맛이 진하다는 점이다. 맛이 진하면서 또 중요한 점은 너무 습하거나 열을 많이 내는 음식, 습열이 많은 음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습하면서 열을 많이 내는 음식은 대표적으로 술을 들 수 있다. 습열이 많은 음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국물이나 물기가 많은 음식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로 냉면이나 미역국은 습기는 많지만 열은 내지 않는다. 오히려 바삭바삭해서 건조한 것 같지만 튀김 종류는 모두 습열을 많이 만드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장수하는 분들이 대부분 튀김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이다. 특히 너무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위에 가장 나쁘다. 앞에서 보았듯이 화를 내는 것도 나쁘다. 한마디로 지나친 감정이 모두 비위를 상하게 한다. 감정이란 곧 나와 사람, 사물과의 관계다. 좋은 인간관계, 좋은 사회관계를 만드는 것이 건강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에서는 단순히 몸만이 아니라 몸과 사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큰 의사는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바로 이런 측면을 말한 것이다.
대담하지 못해도 잘 토한다
대담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이 말은 한의학에서 나온 말로, ‘대담(大膽)’하다는 말이다. 곧 담의 기가 세다는 말인데, 한의학에서 담은 고대의 중정(中正)과 같은 기관이라고 말한다. 고대에서 중정은 인재 선발기관이었다. 각 고을의 유능한 인재를 9가지 등급에 따라 나라에 추천하고 나라에서는 이들을 등용시켰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취직을 하는데 청탁이 없을 수 없다. 특히 봉건사회에서 세습적인 부와 권력을 누리려면 반드시 자신의 자식이 출세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버지가 똑똑하다고 자식도 똑똑하다는 법도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인재를 선발하는 사람에게 뇌물과 압력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외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공명정대한 관점과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 줏대가 필요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대담함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그런 대담함이 없으면 담의 기가 약한 것이고 반대로 여러 이유로 담의 기가 약해지면 담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병든다. 그러면 담이 해야 할 일, 곧 아래로 내려 보내는 일을 하지 못하여 음식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토하면서 푸른빛의 물을 함께 토한다. 푸른빛은 간과 담의 색깔이다.
날씨도 토하게 한다
바람, 추위, 더위, 습기, 건조함, 뜨거움도 토하게 한다. 바람과 추위는 감기를 들게 하는데, 감기도 토하게 한다. 바람이나 추위로 감기에 걸리면 몸을 지키는 위기(衛氣)가 꼭 막혀서 안으로 비위에 해당하는 중초(中焦)의 기를 내몰아 토하게 된다. 너무 더우면 이 더운 기가 위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불처럼 위의 기를 올리기 때문에 토하게 된다. 이처럼 날씨는 모두 위의 기를 병들게 해서 위가 음식물을 제대로 내려 보내지 못하게 하며 도리어 음식물이 올라가게 하므로 날씨도 토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날씨 중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사계절에 따른 날씨가 기본이 되지만 또 하나는 냉난방 시설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밖은 덥거나 추운데 실내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경우,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몸을 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실내와 실외의 온도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실내외의 온도 차이도 중요하지만 특히 난방의 경우, 열풍기나 라지에터에 의한 난방이 더 큰 문제다. 열풍기 등에 의한 난방은 시원해야 할 머리를 덥게 하고 따뜻해야 할 다리를 차게 하므로 온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게 된다. 이미 실내에서 내 몸의 상태가 어그러져 있는데다가 갑자기 실외의 찬 기운을 만나면 내 몸은 적응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난방은 온돌 방식이 가장 좋다. 온돌로 난방을 하면 비록 실내가 조금 더 더웠다고 해도 몸의 상태는 온전하므로 외부의 찬 기운에 적응하기 쉽다.
또 하나 날씨가 급격하게 몸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해외여행의 경우다. 제주도만 해도 한 겨울에는 육지와 날씨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먼 외국의 날씨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외국에 나가 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과 음식도 바뀌었지만 토하거나 비위를 상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미리 현지의 날씨를 잘 알아두어서 대처해야 한다.
담배도 토하게 한다?
담배는 가래를 만드는 주범이다.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은 가래가 많다. 그래서 담배를 피다가 토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본다. 물론 가래를 만드는 것은 담배만이 아니다. 가래에 대해서는 전에 말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줄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담(痰)은 토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담은 우리 몸을 안다니는 곳이 없다 다 돌아다니는데, 그것이 위에 머물게 되면 토하게 되는 것이다.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침은 기를 위로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때 올라가는 기를 따라 음식도 올라온다.
담배가 토하는 원인이 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담배가 모든 악의 축은 아니다. 떨어진 짚신도 짝이 있고 땅에 굴러다니는 똥도 약에 쓸 때가 있듯이 담배의 덕(德)이 없을 수 없다. 담배는 열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열치열(以熱治熱)하는 원리에 따라 속에서 열이 많이 올라오는 경우, 그것을 끌 수 있다. 산불이 났을 때 맞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즈음 미국을 본떠서 금연 운동이 무서운 기세로 일고 있지만, 만일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금연을 한다면 오히려 질병 발생률이나 사망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담배는 정신 건강이라는 점에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담배가 일반 음식처럼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인 것처럼 기호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담배를 피는 사람을 보면 때때로의 기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핀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비유하자면 담배는 자위와 비슷하다. 자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일상화되면 문제가 되듯이 담배도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금연 운동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금연 운동이 얼마나 유치한 발상을 갖고 있는지는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 유럽이나 중국, 일본 등 외국을 나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담배를 끊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담배의 장점도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마치 담배를 피는 사람이 악의 축인 것처럼 범인으로 몰고 가는 금연 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담배를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실내나 길거리에서 걸어다니면서 피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담배는 무조건 없어져야 할 것, 담배는 악이라는 원죄의식을 강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담배를 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담배를 올바르게 피우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고 더욱 나쁜 조건에서 더욱 나쁜 방식으로 피게 된다. 함부로 담배를 필 수 없기 때문에 담배를 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한꺼번에 필요 이상으로 피는 것이다. 세계의 장수하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담배를 피우거나 피우지 않는 것과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이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이외에 우리가 지나치게 섭취해서 좋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밥도 너무 먹으면 배탈이 난다. 담배는 한의학에서 보면 분명히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섭취해야 할 것이지 없애야 할 악의 축이 아닌 것이다. 담배는 분명히 토하게 하는, 그리고 나아가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올바른 흡연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토할 때 관찰해야 할 사항
대소변과 달리 토한 것은 관찰하기가 쉽다. 바로 눈앞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토한 것을 자세히 보는 사람은 적다.
먼저 토한 것이 비교적 신선한지 아니면 삭았는지를 본다. 신선하면서(소화가 되지 않았으면서) 양이 많은 것은 대개 날씨의 영향이 크다. 바람이나 더위, 추위로 감기가 들었을 때 토하면 대개 이런 모양을 한다. 이 경우에는 토하고 나서 감기 증상이 많이 호전된다. 반면에 토한 것이 많이 삭아 있고 양이 많으면 이는 체했을 가능성이 크다. 체한 경우 토하고 나면 대부분 몸의 상태가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 두 가지 경우 공통점은 토한 것의 양의 많다는 것이다. 양이 적으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양이 많으면 병이 생긴지 얼마 안되는 것이고 양이 적으면 오래된 병으로, 더 위험하다.
토하는데 누런 물을 토하면 위에 열이 있는 것이며 푸른색을 띄면 간이나 담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대개는 습열이다) 흰색을 띄면 비위에 찬 기운이 많은 것이고 검은 색이 나면 위나 식도에 출혈이 오래된 것이다. 선명한 피를 토하면 위나 식도에 상처가 생긴 것으로 검은 색을 토할 때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이외에 토할 때 느끼는 맛이나 시간 등도 관찰해야 한다.
썩은 냄새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토할 때는 대개 양이 많고 갑자기 토하게 된다. 토하기 전에 폭음이나 폭식을 했거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토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모든 연령층에 나타날 수 있지만 대개 청소년에게 많고 계절로는 여름이나 가을에 많다. 지역적으로는 농촌에 더 많으며 근대 서양의학에서는 급성위염, 식중독 등일 때 나타난다.
토한 것에서 썩은 냄새가 날 때, 그것이 체했기 때문일 경우는 토하기 전에 속이 메슥거리다가 토하는데 양이 많고 또 신 냄새도 난다. 명치와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음식생각이 없고 설사를 하게 되면 달걀 썩은 냄새가 난다. 이외에 습열이나 열이 쌓여서 썩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체했을 때 가장 빨리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는 물론 토하는 것이다. 체한 경우 토하고 나면 대부분 바로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뒤에서 보듯이 무조건 그리고 자주 토하게 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침을 맞는 것도 빠른 방법 중의 하나다.
쓴물을 토하는 경우
쓴물을 토할 때는 색이 노란 경우가 많다. 양도 적고 가슴이나 옆구리, 명치 등이 심하게 아프며 어지럽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어른에게 많고 아이들에게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제 쓴물도 안올라온다고 하면 심한 고생을 할 만큼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런 경우는 대개 간이나 담과 연관이 많다. 담과 연관이 있을 때는 배가 아프면서 밥을 먹고 난 뒤에 바로 토한다. 토할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입이 쓰고 마르며 음식, 특히 물처럼 마실 것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모두 피곤한 상태가 된다. 근대 성양의학의 담즙역류성 위염이나 담도에 회충이 있을 때에 해당한다.
맑은 물을 토하는 경우
토한 데에 음식물은 별로 없고 맑은 물이 대부분이라면 이는 대개 춥거나 습한 기운 때문이다. 이때는 맛도 별로 없다. 만일 신맛이 난다면 이는 위산의 맛이어서 이 경우와는 다르다. 배가 아프면서 어지럽고 추위를 탄다. 손발도 차다. 어른에게 많고 봄과 겨울에 많다. 대개 몸 안에 찬 기운이 많아서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먹는 것은 물론 몸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물을 많이 토했으니까 물을 보충해준다고 보리차를 먹여서는 안된다. 보리는 찬 성질을 갖고 있어서 물은 보충해주었는지 모르지만 몸을 더 차게 만들므로 나쁘다. 녹차도 마찬가지다. 차를 먹으려면 옥수수차 정도가 좋다. 근대 서양의학적으로는 소화성 궤양에 해당하는데 오래되면 위에 구멍이 생길 수 있고 재발이 잘 되므로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신물을 토하는 경우
토하는 양이 많으면서 신맛이 나는 물을 토하는 것이다. 양이 적어서 신물이 목구멍까지만 올라올 때도 있고 명치가 찢어지듯이 아프면서 열감이 느껴지거나 트림이 난다. 어른에게 많다. 근대 서양의학의 위나 십이지장궤양, 소화성 궤양의 한 증상에 해당한다.
간의 기가 억눌려 그것이 화(火)로 변했을 때는 입이 쓰고 가슴과 옆구리가 그득하니 아프고 성격이 갑자기 조급해지면서 화를 잘 낸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화를 낼 일이 아니었음에도 화를 내고 나서 자신도 놀라게 된다. 대변도 마르고 소변을 누렇게 되며 혀에 누런 설태도 낀다.
음식을 잘못 먹어 위가 상해도 신물이 올라온다. 이때는 신물에 썩은 냄새까지 난다. 토한 것이 비교적 끈적끈적하며 명치가 꼭 막히면서 위가 불타는 듯 아프다. 트림을 하면 썩은 냄새와 신 냄새가 함께 난다.
신물의 점도가 낮으면서 양이 적은 경우는 대개 찬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런 경우는 추워지면 더 심해지고 따뜻하면 덜해진다. 이런 것들은 근대 서양의학으로 보면 위나 십이지장궤양의 한 증상이다.
가래 같은 것을 토한다
토하는데 가래 같거나 게거품 같은 것이 나오고 끈기가 있으며 색은 누렇거나 희며 서로 섞여 있기도 하다. 이렇게 토할 때는 비교적 완만하게 병이 진행되며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몸에 담이 많거나 위가 약한데 간에 찬 기운이 들어가서 생긴다. 몸에 찬 기운이 있을 때는 생강차를 먹으면 좋다. 근대 서양의학으로는 메니엘씨 증후군에서 나타난다.
토해야 할 경우
어떤 이유에서든 토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 아니다. 기분도 나쁘지만 토하면서 식도를 상하게 된다. 식도에는 음식을 아래로 잘 내려가게 하기 위하여 식도 벽에 솜털 같은 것이 아래를 향하여 나있다. 그런데 토하게 되면 이 솜털이 상하여 나중에는 음식을 아래로 내려 보내는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심하면 출혈도 된다. 그러나 병이 들었을 때 오히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부러 토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토하게 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도 토하게 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가 좋지만 임상에서 함부로 쓰기에는 어려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토하게 할 때는 병이 위[高]에 있을 때다. ‘위’는 상초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병이 몸의 위 부분, 그리고 안팎으로 보면 겉에 있을 때에만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감기의 초기(그러나 감기 초기에는 가능하면 토하는 방법을 피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중풍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래가 많은 경우, 간질, 과식(특히 회를 과식했을 때), 오래된 학질, 광증(정신착란과 같은 정신병), 파상풍 등이다.
그리고 무엇을 잘못 먹었을 때에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토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물질, 독극물이나 상한 음식, 지나치게 마신 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토하게 하려면 대개 새벽이나 아침 7-9시 정도가 좋은데 급하면 아무 때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토할 때는 눈을 감는 것이 좋은데, 만일 술에 취해 정신이 없으면 눈을 감기고 토하게 한다. 토하게 하는 방법은 가장 일반적인 것이 손가락 같은 것을 넣고 목젖을 자극하는 것이다. 무즙을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동치미국물도 좋고 그것도 없으면 김치 국물을 먹인다. 이런 것을 먹고 손가락으로 자극하면 대개 토하게 된다.
토하고 나서는 안정을 취하면서 얼음물을 먹는다. 얼음물을 먹으면 어지러운 증상이 가신다. 잘 토하지 못하면 큰 사탕을 하나 물고 있어도 좋다. 그러면 가래나 끈적끈적한 침이 나오고 토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토하면 어떤 의미로든 몸을 상하게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은 함부로 토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 병이 너무 급하거나 늙은 사람, 각종 출혈, 환자가 정신없이 헛소리를 하거나 미친 짓을 할 때, 성질이 급하고 거친 사람은 토하게 해서는 안된다.
민간에서는 참외꼭지를 토하게 하는 약으로 많이 써왔다. 참외꼭지를 말렸다가 가루 내서 살짝 볶아서 달여 먹거나 물어 태서 먹고 토하게 한다. 그러나 참외꼭지는 작용이 강하므로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이에 비해 고삼(너삼)은 가루 내서 8gm 정도씩 식초를 물과 함께 섞어 끓인 물에 타 먹으면 좋다. 이외에 인삼이나 도라지의 꼭지(노두)도 달여서 먹으면 토하게 한다. 간혹 인삼차라는 것을 사먹고 어지럽거나 토하는 사람들은 인삼의 몸통이 아닌 꼭지로 만든 불량 인삼차를 먹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무씨(찧어서 멀건 죽에 타서 거른 다음 그 즙을 먹는다), 백반(물에 녹여 먹는다), 새우즙(새우 300gm에 간장, 생강, 파 등을 넣고 달여서 먼저 새우를 먹고 남은 국물을 먹는다. 마신 다음에는 목구멍을 자극하여 토하게 한다) 등이 토하게 하는 민간요법으로 쓰였다.
그렇지만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토하게 하면 안되며, 아무리 급하더라도 전문가에게 상의한 뒤에 토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더 올라올 쓴물도 없는데 거기에 무얼 또 게우게 할 것인가. 하물며 맛난 것을 찾아 먹고 토하고 또 먹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개기름
개기름 줄줄 흐르는 사장님, 그리고 순사
한때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면 잘 먹고 잘 사는 상징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다. 못살던 사람이 갑자기 잘 살게 되면 먼저 얼굴에 개기름부터 흐른다. 그래서 “그 사람, 얼굴에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게 몰라보겠던데” 하는 식의 표현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사를 통해서 보면 개기름이 반드시 좋은 상징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 일제 때의 악질 고등계 형사를 묘사하는 대목에 단골로 들어가는 표현이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이다. 일제의 착취로 모든 국민이 영양 상태가 나빠서 얼굴에 버짐이 피고 누렇게 뜨는데, 고등계 형사나 친일파들은 일제와 유착해서 호의호식하다보니 얼굴에 개기름이 질질 흐른다. 먹는 걸로 의가 나면 그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 그래서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다. 남들을 다 못 먹고 있는데 혼자만 잘 먹는 걸 보면 배알(창자)이 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 때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것은 영양 상태가 좋다거나 팔자가 좋은 상징이 아니라 반민족적인 것의 상징으로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해방 후 6, 70년대의 경제 성장기를 통해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사업을 해서 성공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창의나 노력보다는 정경유착을 얼마나 잘 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서열이 정해지고 흥망이 좌지우지되었던 때였기 때문에 이 때도 개기름 흐르는 얼굴은 부정부패, 비굴함, 음흉함의 상징이었다.
아주까리기름에 담긴 아픔
수많은 기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고소한 참기름, 나물의 얕은맛을 내주는 들기름, 불도 밝히고 여인네의 머리도 단장하는 아주까리기름, 그밖에 동물성 기름 등 수많은 기름이 있다.
여담이지만 아주까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김지하 시인의 ?아주까리 신풍(神風)?이라는 시에 보면 아주까리를,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꽃이라고 하였다.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하며 한약으로는 비마라고 하여 약으로 쓰인다. 쓰임새가 많은 참 고마운 식물이다. 그러나 그 예쁜 꽃이나 이름과는 달리 아주까리에는 독이 있어서 그냥 식용으로 먹을 수 없다. 그런 아주까리를 먹고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일제시대의 애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주까리 신풍(神風) - 三島由紀夫에게
김지하
별것 아니여
조선놈 피 먹고 피는 국화꽃이여
빼앗아 간 쇠그릇 녹여버린 일본도란 말이여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
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
처절한 神風(신풍)도 별것 아니여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바람이지, 미쳐버린
네 죽음은 식민지에
주리고 병들어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역사의 죽음 부르는
옛 군가여 별것 아니여
벌거벗은 女軍(여군)이 벌거벗은 갈보들 틈에 우뚝 서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미친 군가여
왜 개기름인가
그런데 왜 유독 얼굴에 흐르는 기름에 개기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여기에서 쓰인 ‘개’는 동물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빛 좋은 개살구’의 용법처럼 쓸모없는 것, 변변치 못한 것을 나타내는 접두어다. 그런데 묘하게도 동물로서의 개와 연관을 갖게 된 것은 개기름이 개 한 마리를 잡아야 요리를 할 만큼 양도 안 되고 그러다보니 별 용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돼지기름은 중국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되고 쉽게 많이 구할 수 있다. 민간요법으로 돼지비계는 입술이 부르트거나 뾰루지 같은 것이 생겨 열이 나면서 아플 때 프라이팬에 달구어 너무 뜨겁지 않게 하여 부르튼 부위에 대고 있으면 잘 가라앉는다. 비계가 식으면 다시 달구어 여러 번 해주고 하루에 두세 번 정도씩 이틀 정도 하면 좋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개기름이 잘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소기름이나 돼지기름은 상온에서 쉽게 굳기 때문에 얼굴에 흐를 수가 없다. 개고기는 물에도 씻길 정도로 잘 흐른다. 여기에 개라는 저속한 이미지가 더해져 개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개기름은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오늘날에도 개기름이 흐른다고 하면 번들거리고 끈적끈적한 느낌 때문에 환영을 받지 못한다. 산뜻하고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시대풍조가 반영된 것이다.
개기름이란 무엇인가
개기름은 코를 중심으로 얼굴에 나는 피지(皮脂), 피부 밖으로 흘러나오는 몸 안의 기름, 피부 기름이다. 이 개기름은 적당히 있어야 한다. 만일 개기름이 없으면 피부가 거칠어져서 피부가 트기 쉽다. 또 기름이 없으면 얼굴에 충격이 있을 때 완충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치기 쉽다. 권투 시합을 할 때 얼굴에 로션이나 글리세린 같은 것을 바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메마른 얼굴에 주먹으로 충격을 가하면 피부가 쉽게 찢어지고 통증도 더 크다. 얼굴에 주먹 맞을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다른 예로는 개기름이 없어서 안경을 못 쓰는 사람도 있다. 별것 아니게 보이는 안경의 무게와 마찰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또 개기름은 외부의 먼지나 그 밖의 나쁜 기운을 막는 역할도 한다. 적당한 기름은 먼지나 티끌 등을 미끄러지게 해서 막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건강한 얼굴이라면 적당한 개기름이 흘러서 푸석푸석하거나 거친 느낌이 없어야 한다.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면 부드럽고 윤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기름이 손에 묻어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개기름이 너무 많으면 먼지나 외부의 균을 흡수해서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 여드름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개기름이 심하면 머리에도 기름이 흐르며 더 심해지면 머리카락도 젖는다. 이런 정도가 되면 모근에 염증이 생겨 머리카락도 빠진다.
개기름은 대개 사춘기가 시작되는 14세에서 20세 사이에 생기며 남성에게 많다. 심한 사람은 머리카락이 빠질 뿐만 아니라 피부도 손상되어 누렇거나 약간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하고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가려워서 긁으면 누런 삼출물이 나오는데, 비린내가 나고 끈적끈적하다. 상처가 아물면 샛노란 딱지가 생긴다.
개기름이 나는 이유
이렇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개기름은 왜 나는 것일까. 서양 근대의학의 입장에서는 안드로겐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피지선의 활동이 왕성해지게 되어 개기름이 많아진다고 본다. 안드로겐은 남성의 2차 성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기름은 오히려 정력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개기름이 호르몬의 분비와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력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임상에서 개기름이 흐르는 사람 중에 정력 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에게서도 개기름이 흐르는 때가 있다. 또 전에 얼굴이 푸석푸석하던 사람이 잘 먹게 되면서 개기름이 흐르는 경우에는 분명 호르몬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개기름이 많다고 호르몬 분비를 막을 수도 없고 또 막아서도 안 되는 것 아니라는 점이다.
한의학에서는 개기름이 많이 나는 이유를 주로 열 때문이라고 본다. 그것도 대개는 비위(脾胃)의 습열(濕熱) 때문이며 이외에 피에 열이 많을 때도 개기름이 많이 나게 된다고 본다. 몸에 습열을 만드는 주요한 요인으로는 먼저 기름진 음식을 들 수 있다. 기름진 음식은 고기가 대표적인 것이지만 고기만이 아니라 튀김과 맛이 진한 음식이 다 포함된다. 진한 음식은 모두 몸에 습과 열을 만든다. 술도 음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과다한 음주 역시 개기름을 많이 만든다. 술은 습과 열이 많은 대표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술과 함께 먹는 안주 역시 매운탕처럼 대부분 맵고 짜거나 고기 종류라서 더욱 개기름이 많아지게 된다. 매운 맛은 열을 만들고 탕 종류는 습을 만들며 고기는 습과 열을 같이 만든다.
매운 맛도 그렇지만 단맛이 더 문제다. 매운 맛이 열을 만드는데 그친다면 단맛은 습과 열을 함께 만든다. 요즈음 사람의 입맛이 변하여 단 것만을 좋아하기 때문에 심지어 김치에도 설탕을 넣는데, 바로 이런 단맛이 몸을 해치는 것이다.
또한 맛이 진한 기름진 음식과 함께 너무 잘게 간 음식도 습열을 만든다. 이런 음식의 대표는 햄버거다. 햄버거에 쓰이는 빵은 곱게 간 밀이며 거기 들어가는 고기는 잘게 간 고기다. 그런데다가 고기를 기름에 튀기다시피 구워내기 때문에 기름도 많고 또 맛을 내기 위해 이런 저런 조미료와 소스가 맛을 진하게 한다.
음식 자체도 그렇지만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사, 술이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 위를 상해서 위 기능이 약화되는 것도 개기름을 만드는 한 원인이 된다.
이외에 너무 덥거나 습한 기후도 한 요인이다. 겨울보다는 여름에 개기름이 많이 흐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엘에이(la) 같은 곳은 건조한 사막지대라서 많은 사람들이 피부가 건조해져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엘에이에서 유행하는 화장품이나 목욕제제는 대부분 보습과 보윤에 중점이 주어져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 피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 중에서도 감정이다. 지나친 생각과 고민은 몸의 전반에 걸쳐 나쁜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피부에는 매우 나쁘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감정이 맺혔을 때 그것을 풀어주는 약을 피부병에 쓰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예를 ????이조실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를 통해 수많은 임금들이 고통 받았던 주요한 질환이 피부병이었다. ????이조실록????을 보면 임금들이 즐겨했던 행사가 온천에 가는 일이었다. 모두 피부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최고의 음식과 치료를 받았던 왕들에게 피부병이 많았다는 것은 의외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 종일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을 먹고 정권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정무 이외에 운동이나 여가를 갖기 힘들었으며 거기다가 무더운 여름에도 격식을 갖춘 의상을 입고 있어야 하는 임금의 지위는 건강, 특히 피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개기름을 없애는 데도 중요하다. 마음고생을 하여 속에서 열불이 나면 몸 안에 열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열은 개기름이 생기는 좋은 조건이다.
개기름을 없애려면
그러므로 습열을 만드는 요인을 없애면 개기름도 줄게 된다. 개기름이 흐르는 사람은 먼저 음식부터 조심해야 한다. 맛이 진하고 기름진 음식, 곱게 간 음식은 무조건 피한다. 덤덤한 맛, 다소 거친 음식이 일반적으로 좋은 음식이다. 빵만이 아니다. 곱게 간 곡물이 모두 습열을 만들 수 있다. 요즈음 선식이다, 생식이다 해서 곱게 한 곡물을 먹는 사람이 늘었는데, 미숫가루처럼 한 때의 기호를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음식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곱게 간 음식과 더불어 기름진 음식, 맛이 진한 음식, 특히 단맛과 매운맛을 줄인다. 규칙적인 식사 습관을 들이고 너무 습하거나 무더운 기운을 피한다. 그리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불가피하게 술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습한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사 가는 일도 경제가 허락해야 한다. 더군다나 내 마음을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죽하면 수도하는 분들이 모든 인연을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갈까. 그래서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개기름을 없애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한 음식이나 마음가짐 등에 주의를 빼먹으라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다.
첫째는 세수를 자주 한다.
보통 이는 하루에 세 번 닦지만 세수를 세 번씩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에 한 번 하고나면 그만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얼굴을 잘 관리하려면 세수를 자주하라고 했다. 식사 후에 이를 닦듯이 세수도 식사를 하고 난 뒤에 바로 한다.
세수를 할 때 개기름을 없앨 욕심으로 세정력이 너무 강한 비누를 쓰면 나쁘다. 그렇게 하면 피부는 없어진 개기름을 보충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이 생산한다. 자극이 적고 세정력이 낮은 비누로 자주 하는 것이 더 좋다.
둘째는 팩이다.
한가한 시간에 팩을 하면 좋다. 팩의 재료는 밀가루, 곱게 간 감자 등이 좋다. 밀가루를 쓸 때는 요구르트 같은 데에 개서 쓰면 된다. 밀가루든 감자든 간혹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붉게 되는 부작용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는 바로 사용을 중지하고 찬물에 여러 번 씻는다. 얼굴에 열이 많은 사람은 밀가루에 석고가루를 섞어 쓰고 기름이 아주 많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곱돌가루를 섞어 쓴다. 곱돌은 어렸을 때 땅에 금 긋는 데 써봤을 것이다. 이 곱돌은 땀띠나 습한 곳에 바르는 파우더의 주재료다. 곱돌가루에 약간의 향을 집어넣으면 바로 파우더가 된다.
팩 재료로 진흙도 좋다. 갯벌이 가까운데 있는 사람은 진흙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숯을 써도 좋다. 숯도 기름기나 습기를 잘 빨아들이므로 땀이 많은 사람에게도 좋다. 다만 숯을 쓸 때는 잘 골라서 써야 한다. 최근 시판되는 수입 숯 중에는 유독물질을 갖고 있어서 오히려 피부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제대로 생산된 참숯을 골라 쓰도록 한다.
개기름이 흐른다고 화장지로 씻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피부를 손상시키는 짓이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개기름이 흐르는 원인을 참고해서 근본적으로 내 생활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대변보고 신문지로 덮어둔다고 그 냄새가 어디 가겠는가. 세수나 팩, 그밖에 여러 가지 개기름을 없앤다는 화장품은 어디까지나 신문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탐했던 사람은 이제 덤덤한 음식으로 바꿀 일이며 술을 많이 먹었던 사람은 술을 줄일 일이다. 또 마음 끓이며 살던 사람은 이제 느긋한 마음가짐에 힘써야 할 일이다. 그것이 얼굴의 개기름만이 아니라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기름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없어져야 한다. 의학적으로 보면 그 사람은 병이 있는 것이지 개기름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음흉하다거나 부도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병이라는 것도 사회적인 것이라서 이를테면 일부일처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결혼의 형태인 사회에서 누군가가 매독에 걸렸다면 그 사람은 부도덕하게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독점적으로 나만 호의호식해서 생긴 병이 아니게 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기름은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일리가 있는 비판이 된다. 개기름은 단지 병일뿐이다. 그것도 내가 내 몸을 잘못 관리해서 스스로 만든 병일뿐이다.
인체 배출물이란 무엇인가(마지막 회)
우리는 지금까지 몸에서 나오는 온갖 배출물에 대해 알아왔다. 이 과정을 통해 지저분하다고만 생각되었던 배출물이 정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동의를 얻었다면 필자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지금까지 강조해왔지만 배출물은 단순히 몸에서 필요 없게 되어서 밖으로 내버리는 물건, 찌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내 몸의 성적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한 마디로 마음가짐까지를 포함하여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물질이다.
또한 그것은 내 몸 밖으로 나왔지만 언젠가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다시 내 몸 안으로 들어갈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체 배출물은 자연의 대사 과정 중의 하나다.
한의학에서 보는 배출물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은 자연의 하나로 살면서 자연을 호흡하고 먹으며 다시 그 자연을 내놓았다가 다시 먹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출물에는 이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이나 공기가 내 몸에 들어와 배출물로 만들어지기 까지 나의 몫, 나의 책임이 남아 있다. 이 문제를 더 보기 위해 잠시 ????동의보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동의보감???? 이야기
????동의보감????은 ????향약집성방????, ????의방유취????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3대 의서라고 할 만큼 중요한 서적이며 또 아직까지 임상에서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책이다. 어떤 사람은 ????동의보감????이 단순한 중국 의서의 종합(심지어는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동의보감????을 제대로 보지 않고 내린 평가일 가능성이 크다. ????동의보감????을 중국 의서의 ‘짜깁기’ 정도로 생각하는 근거는 ????동의보감????의 내용이 99% 이상 중국의 의서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완전한 창작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보자. 하루 종일 떠들었다고 해도 내가 처음 쓴 단어나 문장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외국어를 배울 때도 기본적인 문장 2-300개 정도만 외우면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문장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남의 말일까. 마찬가지다. ????동의보감????이 무수한 인용으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 책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동의보감????이 저술된 시기(조선의 17세기 중반)에는 전통적으로 “성현의 글을 따라 서술한 뿐 내가 지어내지 않는다(술이부작)”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수많은 인용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하나의 스타일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용을 하되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똑같이 생긴 레고 조각을 맞추어 비행기도 만들고 집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인용된 내용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동의보감????을 꼼꼼히 읽어나가다 보면 ????동의보감????에서 기존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짐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몸을 정기신(精氣神)이라는 세 요소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정기신은 도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그래서 이를 세 가지 보물, 곧 삼보(三寶)라고도 한다. 사람의 몸을 정기(精氣), 기혈(氣血)과 같은 요소로 보지 않고 정기신으로 보았다는 점, 오장육부를 중심으로 보지 않고 오장육부를 정기신이 작용하는 그릇 정도로 보았다는 점이 ????동의보감????의 특징이다.
이렇게 ????동의보감????이 정기신을 내세운 이유는 ????동의보감????이 바로 도교의 수련과정과 관련이 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몸을 정기신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이 정기신을 어떻게 수련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나머지 장기와 질병, 나아가 약물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의 ?집례?에서는 “도가는 그 정미로움을 얻었고 의가는 그 거칠음을 얻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의보감????은 기존의 의서와 거의 완벽하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의학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황제내경????의 도교적 성격이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퇴색하고 특히 중국의 송나라와 금원시대(金元時代)에 이르러 유교적인 색채로 변해가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임과 동시에 도교적인 전통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보감????은 유교적인 색채가 짙은 책들을 인용하면서도 그와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었다.
????동의보감????의 구성
이런 점에서 ????동의보감????을 보면 ????동의보감????은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편제에서도 매우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의 다섯 편으로 이루어졌다.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내경편?은 몸의 안에 있는 것을 다루었고 ?외형편?은 말 그대로 몸 밖에 보이는 것들, 예를 들면 머리, 얼굴, 손, 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잡병편?은 병을 진찰하는 법과 기본적인 치료법, 그리고 말 그대로 온갖 잡다한 병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탕액편?은 한약재에 대한 설명이고 ?침구편?은 침과 뜸에 대한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경편?이다. 다른 편은 기존의 의서에서도 이미 비슷하게 분류하고 있던 것이며 몇 가지 특이한 사항이 있지만 기존의 의서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내경편?은 먼저 몸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세 요소인 정기신에 대해 논의한 다음, 이 정기신이 작용하게 될 그릇(場)으로서의 몸 안의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거기에는 피도 있고 오장육부도 있다. 그런데 다소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도 그려져 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그 중의 하나는 바로 배출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꿈과 목소리(성음), 말하기(언어)다. 먼저 꿈과 목소리, 말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동의보감????에서 꿈은 나와 별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의 사물과 접한 내 몸의 한 반응이다. 꿈은 바로 정기신 중의 신(神)이다. 다시 말하면 꿈은 신이 작용하는 하나의 장(場)인 셈이다. 목소리나 말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몸에 들어와 내 몸의 좋은 기운(正氣)와 작용한 결과 드러나는 것이 목소리나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몸의 기가 작용하는 또 하나의 장인 셈이다.
오장육부는 당연히 정기신이 작용하는 가장 중요한 장이다. 이와 더불어 자궁(胞)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의서에서는 부인문(요즈음으로 말하자면 부인과)에 해당할 자궁이 바로 ?내경편?에 들어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소위 배출물에 해당하는 담음이나 진액(땀), 대소변도 ?내경편?에 들어 있다. 소변을 예로 들어보면 소변은 단순히 찌꺼기를 여과하고 남은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의 작용(氣化)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기가 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예 배출물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동의보감????에서 배출물은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가 하는 문제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정기신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정상적으로 나오게 되든가 아니면 몸 안에 머물러 있게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나오더라도 병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의보감????의 저자는 흔히 병적인 산물로 간주되는 땀이나 코, 대소변과 같은 배출물을, 몸 안을 구성하는 요소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대소변이 몸 안에 있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은 정상적인 것인데 다만 나를 살아가게 하는 정기신의 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 병적으로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출물들이 제 갈 곳(몸 밖)으로 제대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기신의 수련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기신을 잘 가꾸는 방법
정기신을 잘 가꾸려면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정은 몸의 바탕을 이루는 물질을 말한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태어나서 음식 등을 통해 보충하는 정, 두 가지가 있다. 그 어느 것이든 내 몸의 생산과 재생산(생식)을 위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근본 물질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는 정액이 포함된다. 흔히 도교에서 접이불사(接而不瀉)니 접이불루(接而不漏)니 하여 성관계를 갖되 정을 아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다시 몸 안으로 돌려 정을 넉넉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정을 아끼는 데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것은 마음에 의한 정의 소모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마음을 성적(性的)인 곳에 집중하는 경우다. 구체적으로 몸을 쓰지 않더라도 음란물을 보거나 그런 생각을 골똘하게 하는 것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경우 정은 몸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몸 안에서는 정이 이미 소모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기를 아끼는 방법은 기공과 같은 수련을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일상적으로 몸을 수고롭게 굴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게으르면 기가 잘 돌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한 일과 운동이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 하는 방식도 어떤 사람은 한번에 큰 힘을 잘 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적은 힘이지만 꾸준히 오래 하는 일을 잘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일을 하고 나서 약간의 피로함을 느끼지만 쉬거나 잠을 자고나면 곧 회복이 될 정도의 양이면 충분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보통 운동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운동도 나이에 따라, 그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젊을수록 빠르고 힘을 몰아 쓰는 운동이 좋고 나이가 들수록 느리면서 힘을 골고루 나누어 쓰는 운동이 좋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운동은 산책과 등산(암벽이나 고도가 높은 전문적인 등산 제외)이다. 산책이나 등산 모두 자연을 직접 대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이런 운동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좋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내기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산책이나 등산을 하면서 내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간혹 ‘등산대회’ 같은 행사를 하면서 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망발이다).
다음으로는 신(神)이다. 신은 정신을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넓게 생명력이 발현되게 하는 힘을 말한다. 한 마디로 귀신같은 것이어서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명 현상을 모듬으로 부르는 말이다.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도 신이 있어야 차릴 수 있는 것이므로 정신은 신이 나타난 한 측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신은 신이 부리는 하나의 작용일 뿐이다.
이 신은 심장에 들어 있다. 흔히 한의학은 뇌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생각을 하게끔 하는 신이 심장에 있을 뿐이지 심장 자체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심장에 있는 신이 작용하여 온몸을 이용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한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는 생각을 심장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주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심장에만 신이 간직된 것은 아니며 오장육부 모두에도 신이 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온몸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심장의 신은 그런 여러 신을 통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 신을 잘 다스리려면 무엇보다도 도교에서 말하는 청정과 허무가 중요하다. 청정은 말 그대로 맑고 고요한 마음이다. 허무는 골똘하게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잔꾀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청정과 허무의 상태가 무욕무심의 상태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별 이유도 없이 뺨을 맞았을 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허무가 아니라, 뺨 맞고 화는 나지만 곧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 비유하자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파문은 일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 다시 고요한 수면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상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마음은 물론 몸도 건강해지며 어떤 병도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귀신이다
귀신을 본 사람이 있는가. 누가 자기는 귀신을 보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헛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헛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있는 것을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그것이 그렇게 느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나는 왜 그것을 느꼈을까. 그것은 내 몸의 신이 그렇게 한 것이다. 내 신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헛것을 볼 리도 없고 있는 것을 잘못 볼 리도 없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에서는 꿈도 정기신의 상태, 특히 신의 상태와 연관하여 설명한다. 신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여 기가 혼란스럽게 되면 꿈에 헛것을 보거나 여러 가지 꿈을 꾸게 된다. 예를 들면 꿈에 불이 나오면 몸 안의 양기가 넘치는 것이고 반대로 물을 보면 음기가 넘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몸의 기가 어지럽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몸도 마음도 완전한 성인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꿈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잠을 푹 잘 수 없어서 피곤하고 심장 계통의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장은 한의학에서 신이 머무는 곳이다. 그러므로 심장 자체가 아니라 내 몸의 귀신, 곧 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배출물은 귀신이 부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에서 나오는 배출물은 병적인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자연과 내 몸이 하나되어 제대로 순환하고 있다는 표현일 뿐이다. 배출물은 더러운 것도, 없애야 할 것도 아니다. 월경이 더럽다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가. 땀이 귀찮다고 땀구멍을 막을 수 있는가. 아니다. 월경은 때에 맞춰 나와야 하는 것이고 땀도 상황에 따라 나와야 하는 것이다. 다만 잘 나오느냐 제대로 못나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정기신의 작용, 한 마디로 하자면 신의 작용에 따라 나온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걱정을 한다. 내 나이 이제 벌써 60이 넘었는데 그동안 잘못 살았기 때문에 건강은 바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러나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도를 배우는 데는 빠르고 늦음이 없다고. 그런 예로 마자연이라는 사람이 64세가 되어 늙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유해섬이라는 스승을 만나 도를 닦아 장수했다는 말이 나온다. ????동의보감????에서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믿음을 갖고 힘써 구한다면 비록 120세라도 처음 태어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스승과 믿음, 그리고 본인의 노력으로 건강과 장수는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배출물을 통해 몸의 상태를 알아보았지만 결국 이런 모든 작업의 결론은 내 몸과 자연,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배출물이 단순한 찌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자연인 내 몸의 한 순환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정상적으로 배출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기신의 수양이 중요하며 정기신 중에서도 그 근본인 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더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는 분은 ????동의보감????(특히 제일권)을 직접 읽어 보시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동의보감????은 의서라는 선입관 때문에 너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원리만 알고 있으면 마치 소설처럼 쉽고 재미있는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다(번역본 중에서는 필자가 참가하여 작업한,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동의보감???? 제일권을 권한다). 배움에 스승이 없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그런 귀신이 작용하지 않으면 어떤 배움도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동의보감????은 누구나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꼭 직접 읽어 보실 것을 다시 한번 권해드리는 바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과 귀중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귀농통신???? 편집진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