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글)

홍어 이야기 ( 왜 홍어좆이 만만한 것인가 ?)

 

조선일보에 한현우 기자가 있다 . 그가 한 때 남도의 중심지 광주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경찰 사건을 주로 맡았다. 지금은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 공사로 해체되고만

옛 전남도청사 안에 있는 전남 경찰청이 주 무대였다.

기자들이 몰려 있는 곳은 경찰청 기자실. 남도 출신 기자들이 우글거리는데 거의 유일한 비(非)남도인이었다. 처음엔 남도화법(話法)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중에는 남도 출신 기자들이 한 기자의 말 실력에 되레 뒤집어졌지만)

 

" 어이, 거석 좀. " (한 기자 속으로 '거석'이라니?, '거석'이 도대체 뭐야?)

설명하자면 " (상대방도 잘 안다는 것 전제하고) 그것을 주라 " 는 뜻이다.

기자실이기 때문에 기사 자료를 뜻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물건을 말할 수 도 있다.

처음 당(?)하는 입장에서 순간 '거석이 뭘까' 하며 꼬리가 올라가는 " 예? " 라 할 수 밖에.

" 어이, 거시기 하러 가세. " (한 기자 속으로 '뭐 하자'는 얘기지?)

 

다른 기자들이 점심(시간) 무렵에 이 말을 하면 " 점심 하러 가자 " 라는 뜻이다.

처음 들었을 땐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직도 이 '거시기'에 관한 얘기를 가끔씩 늘어놓는 한 기자는

" 처음엔 (알아듣느라) 버벅대기도 했지만 (한 기자의 이 표현은 좀 겸손한 것 같다),

곧 적응하고 보니 '거석' '거시기' 말로

전라도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통하는 '신통한' 말이었다 " 고 했다.

 

'거시기' '거석'이 나온 김에 하나 더 해볼까.

'거시기'로 말하자면 (대)명사, 형용사,동사 등 상황에 따라 도깨비 방망이 처럼 갖가지로 쓰인다.

 

남도땅 해남에서 태어난 시인 황지우의 작품에 '1983/말뚝이/발설'이 있다.

'위어매 요거시 머시다냐/요거시 머시여/응/머냔 마리여/?'로 시작했다가,

그 후반부를 '그래도 거시기 머냐/우리는 거시기가 거시기해도/거시기라고 미더부럿제/그런디이/머시냐/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기히어부럿는디/그러믄/조타/조아/머시기는 그러타치고/

요거슬 어째야 쓰것냐/어째야 쓰것서어/응/요오거어스으을' 이라고 마무리했다.

'거시기'가 생각나 예전에 보았던 황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쳤던 것이다.

 

'말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지식인)으로서의 비참' 한 정황이 짐작되는 시다.

'참 거시기하다'. 남도에서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도 있지만,

남도에서 '거시기'는 그래도 잘 통한다.

 

▶홍어에 돼지고기를 올려놓았다. 묵은 김치를 아래에 놓고, 그 위에 홍어 한 점,
다시 삶아서 연한 돼지고기 한 점을 얹어 한 입에 넣는다. 막걸리도 함께 들면 그
순간 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사진=김신영 기자

 

이번 글은 '거시기' 에 관한 것이다.

'거시기'는 성기(性器)를 뜻할 때가 많다. 이 글의 그 '거시기'는 '홍어좆' 이다.

남도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로 " 만만한 게 홍어좆 " 이 있다.

 

나는 과격한 사람은 아니지만, 글과 말의 뜻과 어감을 충분히 살리려면

'거시기'의 대상을 그대로 쓰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이다.

이번에 홍어 이야기를 쓴다는 얘기를 듣던 나주시 조준식 홍보팀장은

"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홍어좆 에 관한 정설을 알려달라 " 고 했다.

평소 궁금했던 모양이다.

 

'왜 홍어좆이 만만한 것인가' 에 대한 답이 이 글의 종착역 이다.

 

▶홍어 수컷이다. 양쪽에 거시기 가 달렸고, 가운데 꼬리가 달렸다. 사진=김영근 기자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너네 아버지 별명이 왜 홍언지 알아? 홍어는 한 몸에 자지가 두 개 달렸거든,

그래서 바람둥이였던 거구. "

 

홍어좆은 두 개가 맞다. 정약전의 '자산어보'('현산어보'라 읽는 이도 있다)에도

홍어에 대한 정보를 싣고 있다. 그 중의 일부이다.

'수컷에는 흰 칼 모양으로 생긴 좆(陽莖)이 있고, 그 밑에는 알주머니가 있다.

두 개의 날개 (가슴 지느러미) 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있는데,

암놈과 교미를 할 때 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미를 한다.

암컷이 낚시 바늘을 물고 발버둥칠 때 수컷이 붙어서 교미를 하게 되면

암수 다 같이 낚시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

암컷은 낚시에 걸렸기 때문에 결국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흔히 말하는 바, 이는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 라고 한다'

 

                 ▶홍어 암컷 세마리다. 사진=김영근 기자

 

내가 잘 아는 역시 남도땅 강진에서 태어난 김선태 시인은

홍어의 '거시기한' 교미를 시로 묘사했다.

그는 지금 목포에 둥지를 틀고, 고향 강진을 오가고 있다.

그도 술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홍어에 관해서도 일찍이 한 발을 걸쳐놓았다 .

'홍어 이야기' 라는 시를 통해서 였다.

  홍어 낚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홍어 수컷을 낚는 데야  홍어 암컷을 미끼로 쓰면 직방이지요

  갓 잡은 암컷을 실에 묶어 도로 바닷물 속에 집어 넣으면

  수컷이 암컷의 아랫도리에 달라붙어 그대로 따라 올라오지요

  대롱 모양의 수컷 거시기는 두 개인데 희한하게 가시들이 촘촘 박혀 있어

  발버둥쳐도 잘 안빠진다는 말씀 . 거참, 그야말로 거시기 물린 셈입니다

  그렇게 해종일 수컷을 낚다보면 아랫도리가 너덜너덜해진 암컷은

  그만 기진하여 죽고 만다니  

하여튼, 짝짓기를 우해서라면 홍어도 한 목숨 거나봅니다.

 

 

▶배를 맞대고 꼬리를 꼰 자세로 교미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억지로 떼놓으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출처: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5』,청어람미디어,2007(1판3쇄),262쪽. )

 

 

그런 홍어좆 은 뭍에 올라오면 완전히 '찬밥'이다.

홍어배가 주낚 (홍어를 잡기 위해 심해에 늘어뜨리는 긴 낚시줄)을 걷어 올릴 때

큰 암컷이 물린 채 올라오면 어부들이 신이 나서 " 암치다 " 라고 요즘도 소리친다.

 

수컷은 찬밥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세'를 당했다.

홍어꼬리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꼬리보다는 짧은 '거시기'가 달려 있으니,

꼬리처럼 달린 것이 도합 셋이다. 암컷은 당연히 하나 밖에 없다.

 

수컷은 암컷보다 살이 뻐세기(뻣뻣하고 질기다) 때문에

이왕이면 찰지고 씹는 맛이 좋은 암컷을 더 선호할 수 밖에.

그렇다 보니 수컷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팔리더라도 암컷이 더 값을 받았다.

수컷의 '거시기'를 자르면, 암컷으로 둔갑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어부나 상인의 입장에서는 수컷은 별로 환영 받지 못한 선수다.

수컷은 얼마나 억울 하겠는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컷으로 태어난 운명을 슬퍼할 수 밖에 없었을까.

'무언의 항변'도 했을 것이다. 단지 사람들은 그 항변을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주 영산포에서 '홍어1번지'를 하는 주인장 안국현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예전 5일장 마다 홍어 장수들이 돌아다녔다.

홍어를 팔기 위해서는 '맛뵈기'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몸체의 살점을 떼내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거시기'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려있어도 환영 받지 못하는 거시기'를 미리 떼내어 놓았다가,

살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한 점씩 맛보게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잘리는 신세'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뭍에 나오기만 하면 '잘리는 신세'. 그랬으니 '만만했다'는 것 아닌가.

사람들 사이엔 그래서 " 만만한 게 홍어좆 " 이란 말이 소통되었다.

" 만만한 게 홍어좆이냐 " 라고 했을 때는

" 내가 그렇게 홍어좆 처럼 만만하냐 " 는 항변이고,

"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 라는 자기 주장이다.

소리 높여 말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가시가 박히도록 대항하는 언사인 것이다.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는, 오히려 격정적인 남도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덧붙여볼까. '만만찮기는 사돈집 안방'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본다'

'만만한 놈은 성도 없다'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 '만만한 싹을 봤나'.

'만만하다'와 관련된 속담들이다.

어느 것도 '만만한 게 홍어좆' 이라거나 , '만만한 게 홍어좆 이냐' 보다

직설적이고 의미 전달의 강도가 센 것 같지는 않다.

 

 

▶김치와 돼지고기, 그 위에 얹은 홍어. 소금과 기름을 버무린 양념을 홍어에 얹었다.  사진=권경안

 

지난 20일 문갑식 기획취재 부장의 부친상 빈소 (강북 삼성병원)에서도 '홍어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날 서울에 있었다. 돼지고기와 회무침이 안주감으로 나왔다.

남도였다면 돼지고기 옆에 홍어가 있었을 것이다.

 

남도땅 순천 출신이자 입사 동기인 사진부 이덕훈 차장이 한 마디 했다.

" 홍어좆에 관해서는 이설이 분분 하던데 " 라고 운을 떼었다.

" 내가 들었던 것은 '잘리는 홍어좆'이 아니라, 홍어 '거시기'가 '흐물흐물하게' 늘어뜨려져 있으니까, 옆에 있는 물고기들이 '만만하게' 보고 입질을 해대었다는 거야,

그래서 '만만한게 홍어좆' 이라고 한다는데? "

'신설'이자 '이설'이다.

깊은 바다에서 유영하는 홍어에 다가 서 '거시기'에 입질을 해대는

'만만치 않은' 물고기들이 있을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내가 자주 만나는 윤여정씨가 건네 준 글을 보고 나는 '거의 뒤집어졌다'.

홍어 유통지였던 1970년대초 영산포 선창에서 오고 갔을 대화라고 했다.

그냥 간직하고만 있기보다는 '남도 이야기' 독자들과 함께 웃음을 함께 하고자 한다.

대화가 너무 솔직했다면,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윤씨의 글은 영산포 선창에서 '성님' '동상'이 나누는 홍어 '거시기' 대화 다.

 

어이, 동상! 홍애는 어디가 질 맛난지 안가? 누가 머시라고 해도 홍애 배야지를 짝 갈라갔고

애나 쌈지를 꺼내 찬지름을 째까 친 굵은 소금에다 찍어 묵으믄 그 맛이 차말로 고소해불제!

거그다가 막걸리 한 사발 드리키면 세상 둘도 없는 맛이어불제.

느그들은 애래서 그 맛을 잘 모를 것인디.

 

성님, 먼 말씀을 그리 섭하게 허시오? 지가 애리다고라? 저도 장개 들어서 처자식이 있는 몸이요.

글믄 형님은 홍애를 어째서 홍애라고 헌지 아요? 껍닥은 시커매도 배깨가꼬 썰어노문 살이 삘개부요. 그래서 붉을 홍자를 써서 홍애라고 했답디다. 이것은 차말이요.

 

동상, 먼 소리여? 그게 아니여! 홍애는 다른 물괴기보다 넓적하다고 혀서 넓을 홍자를 써서 홍어라고 한 것이여! 너는 몰라도 한참 몰라, 이 무식한 놈아!

 

성님, 머시라고라? 무식하다고라? 홍애좆 같은 소리 허덜 마시오 .

 

너, 시방 머시라고 씨불거리냐? 홍애좆이라고 해부렀냐? 이런 씨벌놈이 없네?

너, 홍애좆이 먼 말인지 알고나 씨부리냐?

 

성님도 참, 홍애좆을 지가 왜 모르겄소? 숫놈 꼴랑지 양쪽에 까시 달린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있는 것이 홍애좆이제 머시라요?

 

동상, 차말로 홍애좆도 모르구만. 잘 들어! 이놈아,

홍애좆은 너같이 씰데 없는 놈이나 밸볼일 없는 놈들을 비꼴 때 쓰는 말이여.

잡을 때 거시기 까시에 찔래서 기찮고, 괴기를 썰어놔도 암놈보다 맛탱가리가 없어서

잔치집이나 상가집에서도 사가들 안해부러. 그래분께 뱃사람들이 좋아 허겄냐?

 

아따, 성님. 벨라 유식헌 척 허요 잉? 그래도 숫놈은 심 하나는 끝내주겄소 잉?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쓴께 말이요.

 

에라, 상놈의 새끼! 근께 너보고 홍애좆이라고 허제.

 

나는 상당한 기간 완벽한 표준어 구사를 목표로 언어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서, 친구들로부터 '표준어를 어디서 배웠느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다.

광주가 고향이거나, 남도에서 '공부해보겠다'고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사투리를 '진하게' 썼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도출신인 내가  남도의 말, 그러니까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으니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었다.

그 남도의 말 중 '거시기'나 '거석'도 해당되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왜 표준어를 구사하려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읍내로 오가던 중학 시절, 그 때부터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골 국민학교 시절에는 농사철이 되면 농사를 돕고,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놀던 그런 때였다.

 

 

  ▶흑산도 근해에서 한성호(선장 이상수) 선원이 홍어를 잡고 있다. 사진=김영근 기자

 

중학생이 되고 나서 부턴 제대로 공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배움과 인생의 수학기에서 있을 법한 것이다.

그래서 표준어를 정확하게 써보고자 했던 것도 그런 노력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남도의 말을 '질퍽하게' 쓰지는 않는다.

섬진강권역 출신으로 '가오리'를 먹고 자랐지만, '홍어'는 어른이 다 되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홍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남도를 알기 시작했다.

 

이제는 '표준어를 쓰자'고 하자거나, '남도의 말을 쓰자'고 하자거나 하는 이분법을 벗었다.

이젠 '거시기'를 쓸 수도 있고,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나란 존재는 어느 고유한 것으로부터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또 고향 아닌 밖에서 모두 이뤄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의 합성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의 내용과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향을 떠나서 다시 돌아와 보니, 고향도 보이고, 밖도 보였다고 할까.

 

이젠 안과 밖이 소통하는 가운데, 은연중 내 몸에 흐르거나,

나의 몸 위에 한 겹씩 씌워지는 남도인이라는 문화적 DNA나 외피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 Recent posts